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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쓰이는 영화용어 해설

가상선(imaginary line)

연기축(action axis) 또는 180도 법칙(180 degree rule)이라고도 한다. 다수의 등장인물이 복잡하게 움직이는 장면을 촬영할 때 연시 전환의 규칙이 깨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적용하는 상상의 선. 일반적으로 감독이나 촬영기사는 마음 속으로 카레라 전방의 인물중 프레임의 양 측면에 위치한, 카메라와 제일 가까운 두 인물간에 직선을 그은 다음, 촬영을 진행해 감에 따라 그 선을 넘어선 곳으로 바로 카메라를 옮길 수가 없다. 즉 두 인물 사이에 그어진 180도 선과 그 선상에 위치한 카메라 사이의 어느 삼각형 내에서만 자유로이 커트할 수 있다. 만일 이 가상선의 규칙을 어기는 경우에는 시점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혼란을 초래하게 되므로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물론 인물의 이동에 따라 각각의 가상선 또한 변화하며, 동시에 카메라 움직임에 따라서도 가상선은 자유롭게 변화하게 된다. 하지만 현대영화에서 이러한 180도 법칙은 감독의 계획된 의도에 의해 빈번히 위반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정확한 연출의도를 가지고 이러한 180도 법칙을 위반하는 것은 극적인 연출 효과와 충격 효과 등을 유발시킬 수 있으나, 이러한 법칙을 모르고 어기는 경우나 자주 어기게 되면 관객의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



감정이입 (empathy)

립스의 미학에 있어서의 미 의식의 근본원리. 자기의 감정을 대상 안에 이입하여 그 대상과 자기가 융합하는 사실을 인식 가능하게 하는 특수작용. 미적 태도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미의식에서는 완전하고도 순수하게 나타난다. 감정 이입설에 의하면 미적 가치란 객관화된 자아 감정이며 미적 쾌감의 필요성도 이를 바탕으로 한다. 영화의 경우에는 대개 작중인물이 위험에 처했을 때 관객이 마음을 졸이는 따위, 요컨대 작품 속의 상황에 대해 관객이 주관적인 심리적 관계를 지녔을때를 가리킨다.



개념 편집 (concoptual montage)

일련의 다양한 쇼트들을 배열함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는 관념적 의미를 창조해 내기 위한 편집. 이야기의 극적 진행보다는 두 개의 화면이 병치되어 새로운 추상적 개념을 도출해내기 때문에 이른바 지적 편집, 변증법적 편집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방식은 특히 1920년대에 러시아의 에이젠슈타인(S.M. Eisenstein)이나 푸도프킨(V.I. Pudovkin)과 같은 이론가들이 창조한 바 있다. 이를테면 <전함 포템킨(The Battleship Potemkin '25)>에서 에이젠슈타인은 계단에서 몰려내려오는 군인들/ 경악해서 외치는 한 여인(=압제의 인식)/ 계단 아래 군중들의 도주(=폭동의 진압)/ 군인들의 사격(=혁명정신의 분산) 등의 변증법적 관념을 실현한 바 있다.(->몽타주)



개퍼 (gaffer = chefbeleucher = chef electricien)

조명 담당 부서의 우두머리. 촬영 감독의 지시를 받아 영화 제작상의 조명분야를 총괄한다. 보스 일렉트리션(boss electricien), 치프 일렉트리션(chief electricien), 치프 주서(chief juicer)라고도 한다.



개성파 배우 (personality star)

대중적인 인기가 높은 배우를 스타라고 할 때, 이를 대별하면 자신의 페르소나를 통해 이미 획득한 대중적 이미지에 부합되는 역할만을 맡게 되는 배우. 이에 반해 연기파 배우(actor-star)는 자신의 개성적인 연기를 통해 이미지를 구축함으로써 훨씬 연기 폭이 넓고 다양한 역할을 담당한다. *페르소나 - 마스크(Mask)를 뜻하는 라틴어오서 영화, 연극, 문학 등에서의 등장인물. 더 정확히는 작가나 감독에 의해서 영화상에 창조된, 특히 리얼리티의 비명과 상호관계를 갖도록 창조된 등장인물의 심리적 이미지를 가리킨다. 현대에 와서는 특정한 감독의 영화에 단골 출연하는 배우를 가리키는 말로서 사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마틴 스콜세즈 감독의 페르소나는 로버트 드니로.




고보 (gobo)

원치않는 표면이나 특정의 영역에 투사되는 빛을 차단시키는 차폐막, 또는 마이크에 포착되는 소리를 흡수하는데 쓰이는 소재일반.



고속촬영 (high-speed cinematography)

영사시 느린 화면으로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 정상적인 촬영 속도인 24fps 보다 빠르게 촬영하는 기법. 극적인 순간의 심리적 지속감, 향후의 편집을 위한 프레임 관찰, 운동경기나 물방울의 튀김을 분석하는 등의 특수 목적에 사용된다. 현재 기네스북에 오른 최고기록은 초당 2500프레임으로, <스타워즈>에서 행성의 폭발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특수하게 고안된 회전프리즘 카메라를 사용하였다.



고퍼 (gofer)

제작상의 잔신부름을 담당하는 조수. '무엇을 가져오다(goes for ...)'라고 할 때의 말에서 유래된 속칭으로 gopher라고도 한다.



교차편집 (cross cutting, montage)

각기 다른 장소에서 동시에 발생하는 평행 행위를 시간상 전후 관계로 병치시키는 편집기법. 영화사적으로는 포터(Edwin S Porter)가 <미국 소방수의 하루>와 <대열차 강도>에서 최초이며 극적으로 사용한 이래 그리피스(D.W. Griffith)와 러시아의 몽타쥬 이론가들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추적 장면 등에 많이 쓰이며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데 효과적이다.



그립 (grip)

잡역부원. 무대 촬영에 필요한 목재 도구를 설치하거나 달리 등의 이동 촬영에 수반되는 제반 작업을 전달하는 고용인. 이들 중의 우두머리를 key grip이라 한다.



느와르 영화 (film noir)

프랑스 비평가들이 2차 대전 후 자국의 영화관마다에 범람하는 일련의 헐리우드 영화를 가리켜 부여한 명칭으로서 일명 다크 필름(dark film), 또는 블랙 시네마(black cinema) 라고도 한다. 본래 이 용어는 18c-19c의 프랑스 평론가들이 영국의 고딕 소설을 검은 소설(roman noir)이라 부른데서 유래된 것이다. 1940년대 초반에 대중들이 악한 영화에 점차 지루함을 느끼게되자 이의 대안으로 할리우드가 주력했던 유형의 영화로서 이후 50년대 초반까지 약 10년간 인기를 누렸다. 범죄와 파멸이 반복되는 지하세계의 어둡고도 우울한 화조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지난 날의 악당으로 되돌아간 고독한 사나이의 처절한 종말을 냉소적이고도 비관적인 양식으로 묘사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형식적 측면으로는 실내나 옥외를 막론하고 야간장면이 많고, 밤거리로 대변되는 무대나 그림자 짙은 조명은 운명주의의 분위기를 한껏 자아낸다. 그리고 이처럼 신경과민일 정도의 긴장감이 심리적인 연기나 운명을 드리운 촬영각도 등과 어울려 더욱 고조되는 경향을 지닌다. 하워드 혹스의 <빅 슬립(Big Sleep)>, 존 휴스톤 감독의 <맬티즈 팬콘(The Malteese falcon '41)>, 로버트 앨드리치의 <키스 미 데들리(Kiss Me Deadly '55)>, 그리고 오손 웰스의 <상하이의 여인(The Lady from Shanghai '48)이 대표적이다. 한편 느와르 영화의 양식은 웰즈의, 일찌기 그림자 짙은 조명과 위압적인 세팅을 사용한 <시민 케인(Citizen Kane '41)>에서 처럼 두드러진 암조를 극히 표현주의적으로 사용한 특정 부문에서도 두드러지며 독일의 표현주의나 거리 영화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따라서 30년대에 미국으로 이주해 온 다수의 독일 감독들에 의해 검은 영화의 주조가 형성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반면에 프랑스의 점령기나 전후의 많은 영화들, 또는 누벨 바그의 일부까지도 느와르 영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멜빌(Jean-Pierre Melville)의 작품들이 대표적이며 특히 고다르(Jean-Luc Godard)의 <알파빌(Alphaville '65)>은 그 스스로가 느와르 영화에게 바치는 작품이라 하여 유명하다. 한편 느와르 영화의 주제나 양식은 로버트 알트만의 <롱 굿바이>, 로만 폴란스키의 <차이나타운>, 로버트 벤튼의 <레이트 쇼>, 그리고 최근작인 로렌스 케스던의 <보디 히트>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쳐오고 있다.



꼴라쥬 필름 (collage Film)

회화의 꼴라쥬와 유사한 형식을 취한 실험 영화의 일종. 구상화, 추상화, 신문, 광고지, 실물 조작, 사진, 잉크 그림 등등의 여러가지 잡동사니를 혼합 배열한 뒤 프레임 촬영이나, 동화, 또는 간헐 촬영 등의 과정을 통해 시각적 리듬의 효과를 창조하려고 의도한 영화. 이를테면, 이 장르의 대표적 인물인 밴더비크(Stan Vanderbeck)의 <브레스데쓰(Breathdeath, '64)>는 상기한 소재와 기법을 혼합하여, 부조리, 희비극, 또는 무정부주의를 표현함으로써 반전사상을 대변한 작품이었다.



구조영화, 구조유물론영화 (structural film)

시트니(P. Adams Sitney)가 1960년대 중반에 발표된 일련의 실험영화를 지칭함으로서 일반화된 장르. 소재 자체가 관념인 영화, 또는 미리 예정된 단순한 형태를 우선적인 특징으로 하는 영화를 가리킨다. 고정된 촬영기 위치, 깜박임 효과, 반복영상의 인화, 영사막에 투사된 기존 영화의 촬영장면을 특색으로 하며, 또는 지덜(Peter Gidal)에 의하면 비환상주의적인 영화로서, 아무것도 제현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유물주의적 평면성, 미립자, 조명, 움직임 간의 긴장을 창조함으로써 이른바 예정된 사실성을 강조하는 영화이다. 그에 의하면 이 유물주의적인 구조영화의 뿌리는 현상을 구조하는 동시에 그 구조를 해독하는데 있다고 한다. 구조영화는 또한 지각영화(perceptual film)이라고도 하는데 그 이유는 영화매체를 통한 지각과 인식의 상호 반응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스노우(Micheal Snow)의 <파장(Wavelength '67)>은 정지상태의 촬영기로 45분 동안 줌을 이용한 연속화면인데, 촬영기 앞에 일련의 유리창을 진열시킨 뒤 그 유리창 사이의 벽에 생기는 무늬의 파동을 촬영하면서 중간 중간에 짧은 동작을 삽입시켰으며, 전기 사인파를 주제음향으로 사용하면서 중간중간에 약간의 대사, 음악, 잡음 등을 삽입하여 관객의 지각적 반을을 야기시키려 하였다.(->유물주의영화, 전위영화)



기록영화 (documentary film)

현실에 대한 허구적 시각이 아닌,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담는 영화의 총칭. 이러한 영화는 실제 사람들, 장소, 사건, 행위 등과 관련되지만, 형식이나 형태의 선택 또한 중요시된다. 제작자가 명백한 영화적 테크닉을 사용하거나, 예정된 신과 이야기 흐름을 통해 어떤 주제를 묘사하는 기록영화의 경우에도 그것의 궁극적인 목표는 관객으로 하여금 사실에 대한 느낌과 올바른 이해를 하도록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제작자가 현실에 대한 느낌과 올바른 이해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제작자가 현실에 대한 특정 시각을 관객으로 하여금 유도하기도 하는데, 1930년대 로렌츠(Pare Lorentz)의 뉴딜(new-deal) 영화가 그 전형적인 예이다. 그러나, 이런 류의 영화가 왜곡된 현실을 주입시킬 목적으로 제작되는 경우에는 선동 영화가 된다. 또 다른 목적의 기록 영화로는 사회적 상황이나 정부시책을 대중에게 보여주거나 교육시키는 목적의 기록영화가 있는데, 예를 들어 1930년대의 영국의 그리어슨(John Grierson) 그룹의 작품들이 이에 해당한다.
'다큐멘타리'란 용어는 '여행담(travelogue)'의 뜻을 지닌 불어(documentaire)에서 유래된 말로, 그리어슨이 플래허티(Robert Flaherty)의 <모아나>(Moana '26)에 관한 평을 "뉴욕선"지에 실었을 때 사용하였다. 후에 그리어슨은 기록영화를 "현실의 창조적인 처리"로 정의하였다. 1948년 세계 기록영화 연합(World Union of Documentary)에서는 기록영화를 "인간의 문제와 해결에 대한 욕구와, 지식과 이해의 폭을 넓힐 목적으로 사실에 입각한 촬영과 진실한 재구성을 통해 현실의 상황을 해석하는 것."이라 정의하였다. 또한 기록영화는 그 광범위한 영역의 분류에 따라 선동적 기록영화(propaganda documentary), 교육용 기록영화, 낭만적 기록영화, 서정적 기록영화, 전위영화, 실험적 기록영화, 뉴스 영화, 기행 영화, 편찬영화(compilation film)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기록영화의 기원은 영화탄생과 더불어 비롯되었다. 1896년, 뤼미에르 형제가 공개했던 실사영화 시리즈도 현실에 어떠한 왜곡도 가하지 않은 일종의 기록영화였다. 그러나 현대적 의미의 기록영화의 시초는 플래허티의 <북극의 나누크(Nonooke of the North '22)>를 꼽는다. 이 작품의 영향으로 이후에도 타지의 이방인들의 삶을 담은 많은 작품들이 줄을 이었다. 플래허티의 작품들은 타지의 이질적인 삶에 초점을 맞추면서 신의 선택, 카메라 워크, 편집에 있어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세밀한 연출력을 보였으며, 이질적인 문화를 시적으로 묘사하였다.
소련에서는 베르토프(Dziga Vertov)가 키노 프라우다 시리즈를 통해 뉴스영화의 몽타쥬 편집에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으며, 후에 그의 이런한 테크닉은 소련의 발전성을 담은 기록영화에도 적용되었다. 유럽 대륙에서는 기술적으로는 기록영화라 칭하기가 힘들지만, 도시에 관한 전위영화인 '도시 교향곡(city-symphonies)'이 1920년대 걸쳐 제작되었는 바, 1926년 카발캉티(Alberto Cabalcanti)가 파리를 담은 <시간들만이!(Rein que les Heures)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플래허티와 베르토프 이후에는 그리어슨이 기록영화사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비록 스코틀랜드 어부를 그린 <표류자(Drifters '29)> 한 작품밖에 남기지 않았지만, 여러 단체의 장을 맡아 많은 기록영화 제작을 지원하였다. 이 그룹의 작품들은 영국인의 삶과 정부시책, 사회문제 등을 대중에게 교육시키고자 제작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기술적으로는 상당히 뛰어났으나 예술적, 미학적이라기 보다는 교육적 목표에 더 큰 가치를 두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라이트(Basil Wright)의 <세일론의 노래(Song of Ceylon '35)>같은 작품은 사실을 직접적이면서도 시적으로 묘사한 격조높은 작품이었다. 대공황중의 미국에서는 정부의 지원을 받은 로렌츠의 주요작품 2편이 만들어졌는데, 황진지역(한발로 볼모가 된 곳)을 담은 <대지를 황폐화시킨 경작지(The Plow that Broke the Plains '36)와 미시시피강, 테네시강 유역 개발 공사장면을 기록한 <강(The River '37)>이 그것이다. 2차대전중에는 영국의 제닝스(Humphrey Jennings)의 <전쟁은 시작되었다(Fires were Started '43)>, 미국의 휴스턴(John Huston)의 <센피에트로 전투(The Battle of San Pietro '44)>와 같은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기록영화가 많이 제작되었다.
1960년대에는 2가지 중요한 기록영화 운동이 전개되었는데, 프랑스의 진실영화와 미국의 직접영화가 그것이다. TV 뉴스와 촬영,녹음장비의 소형,경량화에 영향을 받아 현실에 대한 즉시성, 확실성을 강조하였다는 점에서는 두가지 흐름이 공통점을 지니나, 진실영화가 인터뷰 등을 통한 직접 개입으로 사실을 추적해간다는 점에서 그렇지 않은 직접영화와 구분된다.
기록영화는 그 성격상 일반 영화관에서 상영되기가 힘들기 때문에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따르지만, 우리 주위의 세계를 좀 더 선명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관객과의 만남이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데꾸빠쥬 (decoupage)

시나리오를 분석하여 촬영 대본으로 옮기는 과정. 영어의 브레이크 다운과 유사한 개념으로, 첫째로는 시나리오 작업의 마지막 단계에서 촬영에 필요한 기법을 지시하는 것이고, 둘째로는 시나리오를 필요에 따라 분할, 분석하여 세밀한 촬영 대본으로 작성하는 일, 즉 브레이크다운을 말하며, 셋째로는 촬영중에, 또는 이후에 완성될 영화작품의 내부 구조를 엄밀히 분석, 평가하면서 작업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데구빠쥬는 몽타쥬적 사고나 영상적 사고에 입각하여 엄밀하고도 창의적으로 촬영대본을 작성함으로써 이것이 이후 스크린에 나타나는 최종적인 영화작품과 일치될 수 있도록 하는 연출 미학상의 최종적인 준비단계라고 할 수 있다.



데이 포 나이트 (Day fo Night)

밤의 장면을 낮에 촬영하되 밤의 효과를 얻도록 하는 것. 이 방식은 대개 연기자들에 대한 초과수당이나 바쁜 제작일정 따위의 경제적 이유로 행해진다. 한편 이와는 달리 실제 밤에 밤장면을 촬영하는 것을 나이트 포 나이트라고 한다.



동일화 (identification)

관객이 영화 속의 등장인물에게 느끼는 감정이입.



막스주의 비평 (marxist criticism)

칼 막스와 그의 추종자들의 경제이론과 저술에 바탕을 두고 있는 비평방식. 영화보다 문학에서 활발히 이루어져 왔으나 최근에는 영화연구에 있어서도 단순한 논쟁 이상의 영역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언어학, 구조주의, 또는 프로이드와 연관된 비평은 그 영향력이 크다.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쥬 이론도 막스주의와 헤겔의 변증법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프랑스의 영화비평도 이러한 맥락에 위치한다.
막스주의 비평은 대개의 예술작업에 있어 계급투쟁의 개념을 단순하게 주입시키거나 반형식주의적인 경향을 짙게 풍긴다. 영화의 경우네는 1930년대에 소련에서 제기되었던 비평작업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그러나 소쉬르의 기호학에 영향을 받은 자크 라캉에 의해 프로이드에 대한 재해석이 이루어지고, 루이 알튀세의 막스-구조주의 저술과 장 뤽 고다르의 영화들 등을 통해 막스주의 영화비평은 다소간의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까이에 뒤 씨네마", "씨네띠끄" 등에 의해 이러한 비평작업이 주도되었다. 또 크리스챵 메츠의 경우에는 자신의 기호학적 비평에 막스주의를 가미하고 있기도 하다.



맥거핀 (macguffin)

매거핀(maguffin), 맥거핀(McGuffin)이라고도 한다. 히치코크(Afred Hitchcock)가 극적인 줄거리를 역동적으로 전개시키기 위해 사용한 이래 보편화된 용어이다. 탐정영화나 괴기영화에서 줄거리의 초반부에 극적인 호기심을 유발시키면서도 관객은 잘 알지 못하거나 아니면 미처 깨닫지 못한 극적 요소를 가리키는데, 주로 어떤 대상물이나 피사체의 존재, 혹은 극적 순간이 이에 해당된다. 이를테면 히치코크의 <패밀리 플롯(Family Plot '76)>에서는 실종된 유산 상속자가 맥거핀인데, 그를 추적하는 과정이 전개될수록 사건은 괴이하게 변하는 동시에 관객의 극적 호기심이 증대되거나, 이윽고 극적 전말이 확고해지면서 맥거핀은 그 기능을 마감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맥거핀은 기미크나 위니처럼 극적 효과를 증대시키기 위한 일단의 인물이나 사건, 물건을 지칭한다.



메소드 연기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사실주의적 연기법을 연구하고 습득한 연기자들의 연기를 가리키는 말. 영화에서는 1930년대의 미국에서 감독인 볼레슬라브스키(Richard Boleslavski)와 애들러(Stella Adler) 등에 의해 소개되었으며 스트라스버그(Lee Strasberg)와 카잔(Elid Kazan) 등이 세운 액터즈 스튜디오에서 확고한 기반을 다졌다. 이 메소드 연기는 기술적인 연기에다 심리적인 태도를 혼합시키는 것으로, 일차적으로는 연기자가 철저히 등장인물화하되 동시에 자신의 연기상태를 냉정히 판별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연기에 두드러진 리얼리즘을 부여하고자 했던 메소트 연기에 의해 말론 브란도(Marlon Brando), 쥴리 해리스(Julie Harris), 제임스 딘(James Dean), 칼 말덴(Karl Malden) 등의 연기자가 출연했고, 이들의 활약은 이후 헐리우드 영화계에서 장연스러움을 강조하는 영혼적 연기법을 주도하게 되었다.



몽타쥬 (montage)

설치하다(mounting), 모으다(assembly)라는 뜻의 불어 조립하다(monter)에서 유래된 말. 애초에는 여러가지 영상을 한 화면내에 짜 넣는다는 사진용어였으나, 이후 러시아의 이론가들에 의해 영화에 도입되면서 쇼트들의 여하한 연결에 의하여 새로운 의미를 창조한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으며, 따라서 일면으로는 편집과도 동일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 편집 기법의 창시자는 미국의 포터로 알려져있다. 그는 <대열차강도(The Great Train Robbery '03)>에서 각기 다른 장소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극적인 시간에 따라 적절히 교차편집하여 이른바 평행편집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요컨대 포터는 쇼트가 영화표현의 최소단위라는 개념을 발견함으로써 편집의 창시자라고 불리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참다운 의미에서의 편집의 발견자는 그리피스(D.W. Griffith)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포터는 비록 쇼트의 개념을 발견하기는 했으나 이후의 작품에서는 다시 씬을 최소단위로 하는 단계로 되돌아갔을 뿐 아니라, 그의 쇼트 개념은 씬과 대동소이한 것이었고, 따라서 그의 카메라 움직임은 물리적인 불가항력 때문이었다. 이에 반해 그리피스는 쇼트를 극적 전환의 수단으로 사용하였으며 접사, 또는 삽입화면을 발견함으로써 심리적 표현을 가능하게 하였다. 요컨대 포터는 씬을 중심으로 영화적 줄거리를 전개했으나 그리피스는 표트를 통해 극적 구조를 자유로이 운용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그리피스는 쇼트의 극적 국면과 재현적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미국식 편집을 완성시켰다고 할 수 있는 바, 이를 정리해보면 첫째, 모든 행위의 서술적 연속성을 유지하는 연속편집(continuity cutting), 둘째, 짧은 쇼트의 연결을 통해 관객의 심리를 조절하는 고전편집(classical cutting), 세째, 형식보다는 관념간의 결합을 강조하는 주제편집(thematic cutting)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본 개념을 본격적인 이론으로 성립시킨 것은 러시아의 이론가와 감독들에 의해서였다. 먼저 영화의 눈을 주장했던 베르토프(Dziga vertov)는 편집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표적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리얼리티는 있는 대로 카메라로 포착되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편집함으로써 인상적이고도 설득력있는 전체로서의 리얼리티가 재생산된다. 그러므로 기존의 무능한 인습적 서술영화는 새로운 영화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선전선동이나 계몽을 위한 베르토프의 이론은, 그리피스가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극적 강조를 중요시했던데 비해 다소 기계적이며 수학적인 측면이 강했다. 이에 반해 쿨레쇼프(Lev Kuleshov)의 이론적 실험은 매우 실천적이며 합리적이었다.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에서 '쿨레쇼프 워크샵'을 주도했던 그는 몇가지 실험을 통해 몽타쥬 이론의 성립에 결정적인 토대를 마련했다. 그 중에서도 '쿨레쇼프 효과(Kuleshov effect)', 또는 '이반 모쥬킨 실험(Ivan Mozhukin experiment)'이 대표적이다. 연극배우인 모쥬킨의 무표정한 얼굴을 촬영한 다음, 1.관앞에서 울고있는 여인, 2.소꿉장난하고 있는 천진스런 어린애들, 3.식탁의 스프 접시를 연결하여 관객에게 보여주면, 관객에게는 모쥬킨의 동일한 무표정이 전후의 각 상황에 따라 다른 표정으로 느껴진다는 발견이 있다. 또 '창조적 지리학(creative geography)', 또는 '인공적 풍경화(artificial landscape)'는 각기 다른 장소에서 촬영한 2-3개의 필름을 연결하면 마치 한 장소에서의 상황으로 관객에 보여지며, '창조적 해부학(creative anatomy)'은 각기 다른 인물들의 신체부위를 연결해서 보여준 뒤 맨 마지막에 전혀 다른 인물의 얼굴을 보여주면 관객은 그 모든 장면을 한 인물의 신체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푸도프킨이 경하해마지 않았던 대로 쿨레쇼프는 진정 영화문법을 기초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쿨레쇼프 워크샵'의 일원이었던 푸도프킨(V.I. Pudovkin)은 영화가 쇼트로 표현된다기 보다는 구조화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영화란 조형소라고 볼 수 있는 쇼트가 조립된 것이라는 견지에서 자신의 몽타쥬 이론을 체계화하였는데, 이를 대별하면 구조편집(structural montage)과 상관편집(relational montage)으로 된다. 전자는 쇼트를 하나의 단어로 보고 이처럼 불완전한 개개의 쇼트가 기계적으로 결합되어 씬, 씨퀀스, 시나리오가 된다. 후자는 전자의 단계를 유기적으로 구성함으로써 다시 양 쇼트간의 차이점을 강조하는 대조편집(contrast montage), 교차된 사건의 진행을 강조하는 평행편집(parallel montage), 두 시간의 동시진행을 표현하는 동시편집(simultaneity), 뒤 화면이 앞 화면의 은유나 상징으로 기능하는 상징편집(symbolic montage), 작품전반을 통해 반복되는 주제를 뜻하는 반복편집(leit-motif)으로 분류하였다. 이러한 푸도프킨의 몽타쥬 이론을 보통 구성적 몽타쥬(constructive montage)라고 한다.
러시아 몽타쥬 이론 중에서도 가장 격론을 유발시킨 에이젠슈타인(S.M.Eisenstein)은 몽타쥬의 참다운 위상은 푸도프킨처럼 쇼트의 연쇄(linkage)가 아니라 상충(collision)에 있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푸도프킨이 화면의 병치를 통하여 연속적인 발전을 꾀한데 반해 에이젠슈타인은 화면의 병치란 곧 한 쇼트와 그 다음 쇼트가 충돌하여 하나의 새로운 의미가 변증법적으로 창조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쥬 이론은 보통 변증법적 몽타쥬(dialectic montage), 지적 몽타쥬(intellectual montage), 상충 몽타쥬(collision montage) 등으로 불린다. 그 자신의 분류에 의하여 이 상충의 몽타쥬는 장면간의 내용에는 관계없이 커팅의 템포에 따라 병치되는 선조적 편집(metrical montage), 리듬에 따라 주의지비중을 강조하는 운율편집(rhythmic montage), 멜로디는 물론 색채나 조명에 따라 정서적 반응을 유도하는 격조편집(tonal montage), 이상의 세가지를 종합하는 동시에 관객에게 충격을 주어 강렬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충격편집(overtone montage). 그리고 장면간의 충돌이 새로운 지적 개념을 낳고 이것이 다시 다음 장면과 충돌하여 또 다른 지적 개념을 갖게하는 지적 편집(intellectual montage) 등이다.
한편 유럽에서는 몽타쥬를 일반적인 편집과정으로 사용한다. 즉 쇼트, 씬, 시퀀스가 조립되면서 최종적인 작품으로 완성된다고 본다. 이러한 몽타쥬 이론은 마르땡(Marcel Martin)에 따라 단순한 이야기 전개를 강조하는 서술편집(narrative montage)과 예술적 표현을 중시하는 표현편집(expressive montage)으로 대별할 수 있다. 또 1920년대 이후에는 이른바 미국식 편집(american montage)이라고 하는 몽타쥬 시퀀스가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있다. 전후에는 특히 미국적인 불가시편집에 대항하는 가시적 편집이 유럽의 창조적 작가들에 의해 시도되었는데 이를테면, 고다르(J.L. Godard)의 생략편집 따위가 대표적이다.



미장센 (mise-en-scene)

장면화(putting into the scene)라는 뜻의 불어에서 유래된 용어. 본래는 '장면의 무대화'라는 연극용어이던 것이 전후의 프랑스 평론가들이 비평옹어로서, 그리고 새물결의 감독들이 영화미학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일반화되었다. 특히 "까이에 뒤 씨네마"지의 트뤼포(Francois Truffaut)와 바쟁(Andre Bazin)에 의해 몽타쥬 이론에 반하는 미학적 개념으로 개진된 후, 영화의 공간적 측면과 이에 따른 리얼리즘의 미학으로 정착되었다. 몽타쥬가 한 화면과 다음 화면간의 병치에 따르는 관련성, 즉 추상적 개념을 중시하는데 반해 미장센은 한 화면의 내부에 동시다발적인 많은 영상정보를 보유함으로써 수동적인 인상을 느끼게 하는 몽타쥬에 비해 능동적이며 선택적인 관객의 태도를 요구하게 된다. 따라서 미장센은 화면의 길이가 긴 장시간 촬영이나 원사가 우선되고 한 쇼트가 한 씬이나 시퀀스의 구실을 하게 되며, 이에 따라 연속적이며 유동적인 카메라 움직임이 수반된다. 또한 이처럼 화면내의 리얼리즘이 중시됨에 따라 화면의 층위가 두터워지면서 전심초점을 선호하게 되고 이들 제요소를 박진감있게 느끼도록 하기 위해 기존의 조형적 요소가 중요하게 취급된다. 오늘날 미장센의 일반적 특성을 규정하는데에는 카메라 전방에 있는 모든 영화적 요소인 연기, 분장, 무대장치, 의상, 조명 등을 장면화하여 타당성있는 미학적 결과를 낳았는가 하는 점을 검토하게 되는 바, 이는 곧, '화면내의 모든 것이 연기한다'는 관점을 뜻한다.



베스트 보이 (best boy)

숙련된 제작진의 조수를 일컷는 은어. 주로 개퍼나 키 그립의 부원들이 이에 해당된다.



변증법적 영화 (dialectical film)

서로가 이질적인 개념간의 충돌에 의해 새로운 지적 개념이 창출되도록 구성하는 영화형식 일반. 정,반,합이라는 헤겔-마르크스적 변증법을 원용하는 영화구성의 방법으로 에이젠슈타인(Sergei Eisenstein)이 이론화하고 작품화한 이래 널리 사용되고 있다.(->몽타쥬)



변칙화면 (cheat shot)

카메라 전방에 있는 일단의 소도구나 피사체를 임의적으로 비사실적인 장소에 배치시키거나 돋움상자나 반돋움움상자를 사용하여 연기자의 키를 실제보다 크게 촬영함으로써 장면의 구도를 증진시키는 것. 이를테면 한 장면내에서 같이 연기중인 두 인물에서 커트한 뒤에 한 인물만의 근접촬영을 할 경우, 감독은 이전의 화면에서 그 인물이 처했던 정확한 높이나 위치를 변경시켜 배경과의 관계를 적절히 유지시킬 수 있다. 또는 연기자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장면에서처럼, 실제상으로는 바로 그 밑에 설치되어있는 보호망에 내려선 다음 다시 바닥에서 그리 높지 않은 높이에서 촬영한 뒤에 두 장면을 연결시킴으로써 높은 벼랑에서 실제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갖도록 할 수도 있다. 이때는 관객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전제가 중요하다.



블랙코메디 (black comedy)

심오한 주제를 익살스런 방법으로 다룬 영화나 무대극으로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둡고 염세주의적이다. 핵전쟁의 가능성을 풍자한 큐브릭(Stanley Kubrick)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전형적인 블랙코메디의 예이다.



블로킹 (blocking)

프레임 내에 인물들과 사물들을 배열시키거나 카메라, 조명 등의 기재들을 적절한 곳에 배치시켜 화면구도에 공간감을 만들어내는 예행연습. 등장인물을 블로킹하는 대부분의 경우 객관적 시점이 사용되는데 이는 등장인물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관객 또한 카메라가 액션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쁠랑 세깡스(plan sequence)

축어적으로는 쇼트 시퀀스(shot sequence), 즉 하나의 쇼트가 한 시퀀스 구실을 한다는 뜻. 따라서 원쇼트 원씬(one-shot one-scene), 원쇼트 원시퀀스(one-shot one-sequence), 컨티뉴어티 쇼트(continuous shot), 시퀀스 쇼트(sequence shot)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커트와 커트 사이의 길이가 일반적인 쇼트의 길이보다 훨씬 길어 공간내의 미장센을 강조함으로써, 하나의 쇼트나 그 상위개념인 씬이나 시퀀스의 역할을 담당한다. 안토니오니(Michealangelo Antonioni)의 <패신저>('75)의 마지막 장면은 약 11분간의 장시간 촬영이었고, 히치코크 감독의 <로프>('48)의 마지막 장면은 약 10분이었다.
이처럼 쇼트가 시퀀스를 대역하는 미학적 기능은 곧 미장센 미학의 수평축인 바, <로프>에서 처럼 아직 영화 미학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는 반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주고있다는 점에서 향후의 연구에 기대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불가시 편집 (invisible cutting)

정확하면서도 유연한 연속성이 수반되도록 하는 편집방법, 하나의 사건을 재구성한다거나 일련의 화면을 연대기적 질서 내에 정렬시키는 일반적인 연속 커트의 기법으로서, 두드러지게 역동적이거나 개념적인 편집과는 달리, 연결된 두 장면 사이의 이음새 자체에는 별다른 주의를 환기시키는 일이 없기 때문에 마치 편집되지 않은 하나의 화면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특성이 있으므로 붙여진 명칭이다. 이를테면 두 대의 카메라를 사용하여 빠른 액션의 오버래핑을 촬영한 다음 편집시 이 두 개의 액션을 연속적으로 연결함으로써 커트 자체에는 관심을 두지 않게 하는 방법을 들 수 있다. 이처럼 눈에 띄지 않게 연결되는 편집방법은 대개 한 화면내의 피사체가 움직임의 상태일 때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며, 이는 또한 연속편집의 규칙이 지켜져야 하므로 일명 표준편집(academic editing)이라고도 불린다. 불가시 편집은 특히 감독의 사실적인 스타일을 결정하는 중요 요소이다. 한편 불가시 편집은 에이 비 편집을 통한 인비저블 스플라이스와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사실주의 (realism)

영화는 탄생 이후 사실주의와 형식주의의 두가지 전통이 영화이론을 지배하였다. 흔히 사실주의의 전통은 최초의 영화제작자로 기록되는 뤼미에르 형제로부터, 형식주의의 전통은 멜리에스(Georges Melies)로 부터 이어진다고 본다.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Arrivee d'um Train en Gare de la Ciotat 1895)은 현실세계의 과장없는 묘사에 충실하였고, 멜리에스의 <달나라 여행>(Le Voage dans la lune '02)은 상상의 세계를 묘사하였다.
1910년대 이후에는 편집과 몽타쥬를 중요시하는 형식주의가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나 30년대 후반과 40년대 르노아르(Jean Renoir)와 웰스(Orson Welles)의 전심초점(deep focus), 장시간 촬영기법(long take)이 영화의 리얼리티에 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는 그의 저서 "영화의 이론:물리적 리얼리티의 회복"에서 어떠한 인위적 개입, 특히 몽타주에 의한 개입을 배격하는 물리적 리얼리티의 회복을 주장하였으며, 바장(Andre Bazin)은 영화에 있어 리얼리티의 본질이란 애매성에 있다고 보고 전심초점과 장시간 촬영을 높이 평가하였다. 즉, 프레임 내의 모든 부분이 초점이 맞는 전심초점을 통해 깊이있는 공간을 만들어 냄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적극적인 자세로 공간속의 의미를 추적하게끔 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시공간의 연속성을 보존하기 위해 가급적 편집을 배격하고 패닝, 크레이닝, 틸팅, 트래킹 등의 카메라 움직임과 장시간 촬영을 선호하였다. 특히 전심초점은 웰스의 <시민 케인>(Citizen Kane '41)이후 많은 감독들이 사실적 기법으로 많이 애용하였다. 그러나 바쟁의 이러한 사실주의 이론은 영상 그 자체가 지니는 이데올로기를 간과하였다는 점에서 보드리(Tean Baudry)의 비판을 받았으며, 전심초점에 의한 깊은 공간에 대한 관객의 시선이 능동적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관객은 특별한 단서, 즉 카메라와 형태의 움직임, 소리와 편집 등에 의해 영상을 쫓는다는 반대이론이 노엘 브루슈(Noel Burch)에 의해 제기되었다.



사회적 사실주의 (social realism)

작가가 사회적 문제에 눈을 돌려, 문제 제시는 물론 방향제시에 의미를 두는 사조. 이 사조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영국에서 주도되었으며, 이탈리아 신사실주의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미국의 경우 와일러(William Wyler), 카잔(Elia Kazan) 등이 인종문제, 노동자 문제 등을 다루었는데, 이러한 내용의 영화들을 사회/문제영화(social/problem film)이라고도 한다. 영국은 30년대의 기록영화와 전쟁중의 반기록영화의 사실주의적 전통을 이어받아 50년대 말부터 소위 자유영화라고 하는 그룹이 생겨났다. 라이츠(Karel Reisz), 앤더슨(Lindsay Anderson), 리처드슨(Tony richardson)으로 대표되는 이들 그룹은 1956년 수에즈 침공과 소련의 헝가리 침공으로 인해 자유주의와 스탈린식 공산주의에 모두 환멸을 느낀 일단의 신좌익 그룹으로서, 각종 잡지를 통해 사회비평과 더불어 사회문제를 영화화 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완전한 개인영화의 추구, 작가의 사회적 책임 등을 부르짖으며 각종 사회문제를 기록영화 형식으로 영화화하였다. 특히, 영국의 북부 공업지역을 무대로 이 지역의 노동자 계급을 남부의 중,상류층과 대조하며 모사하였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socialist realism)

1928년 이후 스탈린 정부에 의해 주도된 러시아의 영화 스타일. 종래의 사실주의처럼 단순한 사실적 묘사에 그치지 않고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구현을 위해 모든 예술은 국가의 기술적 개조와 인민의 사상적 개조를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32년 스탈린은 소비에트 작가연맹을 조직하여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희한 문학 및 예술의 창작방법을 제시하였다. 이후 공산당은 푸도프킨(Vsevolod Pudovkin), 에이젠슈테인(Sergei Eisenstein), 베르토프(Dziga Vertv) 등을 형식주의자로 규정지었고, 이들의 작품을 주지주의와 엘리트주의에 젖어 있으며 다수의 대중에게는 난해하여 인민의 이데올로기의 교육에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비난했다. 그리하여, 혁명이후, 새 경제정책 기간 동안 많은 자유를 누렸던 영화인들에 대해 재재를 가하기 시작했다. 당시 루나차르스키에 의해 주도되던 영화산업은 스탈린 하의 관료인 슈미야츠키가 장악하여 대중의 교육과 선전영화 제작에 주력하였다. 그리하여 에르믈러, 유케비치, 바실리에프 등이 사회, 정치적 소재와 새로운 사회에 발생하는 문제들과 싸우는 계급들의 군상을 주로 그려 두각을 나타내었다. 즉 그들은 일상생활의 묘사를 거부하고 역사적 제재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경직되고 극단적인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는 1953년 스탈린이 죽자, 수정이론이 도입되어 후퇴하기 시작하는데, 이 기간 동안 소련의 영화는 이데올로기의 정통성에 얽매인 영화작업의 획일화와 단순화로 인해, 영화의 다양하고 심도있는 표현력의 맥이 끊어지고 말았다.



누벨 바그 (nouvelle vague)

1958년에서 60년까지의 사이에 시작된 프랑스의 영화운동으로 "까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ema)의 비평가들을 중심으로해서 형성되었던 일군의 영화작가들의 작품에 대해 저널리스트인 지로(Fransois Giraud)가 평한데서부터 유래한 명칭. 이 운동은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과는 달리 미학적으로, 혹은 스타일에 있어서 일치된 하나의 사조가 아니고 경제적, 사회적, 역사적 환경하에서 뭉쳐진 재능있는 영화작가들의 집합이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물결의 주축이었던 인물들은 50년대초부터 "까이에 뒤 시네마"에서 비평을 써오던 트뤼포(Fransois Truffaut), 샤브롤(Claude Chabrol), 고다르(Jean-Luc Godard), 로메르(Eric Rohmer), 리뻬뜨(Jacque Rivette) 등이었는데, 이들은 잡지의 발행인이었던 바쟁(Andre Bazin)의 영향아래 전통적인 영화제작을 '아버지 세대의 영화(Cinema du Papa)'라 부르며 거부하고 유연하기는 하지만 전혀 개인적인 특성이 없는 그저 잘 만들어지기만한 영화를 비판하였다. 이들은 개인적인 스타일을 중시하는 작가주의를 주장하며 히치코크(Alfred Hitchcock), 르노아르(Jean Renoir), 로셀리니(Roberto Rossellini), 브레송(Robert Bresson) 등을 찬양하고 그들의 스타일을 깊이 연구하여 많은 영향을 받았다.
"까이에 뒤 시네마"의 비평가들이 비평에서 작품활동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된 계기는 크게 두가지를 들 수가 있는데, 먼저 당시의 프랑스 영화산업의 위기로 영화제작자들이 돈이 적게드는 소규모 제작으로의 관심의 전환을 들 수가 있으며, 다음은 초기의 몇몇 작품을 찍기 위해 운이 좋게도 제작비를 개인적인 재원에서 조달할 수가 있었던 점이다. 새로운 물결의 최초의 작품은 샤브롤의 <미남 세르쥬>(Le Beau Serge '59)라 할 수 있는데 흥행에서는 그다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많은 관심을 끌게 되었고, 이듬해에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Les 400 Coups '59)와 레네(Alain Resnais)의 <히로시마 내사랑>(Hiroshima mon Amour '59)이 각각 그 해의 깐느 영화제에서 감독상과 국제비평상을 타며 크게 성공을 거두자 많은 영화제작자들이 이에 힘을 얻어 1959년에 24명의 신인감독이 첫 작품을 만들었고 이듬해인 60년에는 43명의 신인감독이 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제작자들이 모험적 투자에서 실패를 해서 2년만에 이러한 투자의 원동력을 잃게 되었다. 그리고 고다르를 제외한 대개의 작가들은 곧 정상적인 제작비를 투입하는 상업적 예산에 맞추게 되었다.
새로운 물결의 작가들에게서는 미학적인 일치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공통분모는 이들이 모두 개인적이며 규격에 얽매이지 않는 자세로 영화에 접근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물결의 특징으로는, 첫째 전통의 거부, 일반적으로 인물을 비감성적으로 처리. 둘째 사실적이며 느슨하거나 혹은 혁신적인 플로트의 구조. 셋째 가볍고 운반이 용이한 카메라를 이용해서 자연스러우며 사실적인 카메라 움직임과 음향의 채용, 넷째 다수의 야외촬영 및 실제 배경에서의 촬영. 다섯째 영화적 시간과 공간에 대한 실험성 등을 들수 있겠다.
이 운동의 대표작으로는 트뤼포의 <쥴과 짐>(Jules et Jim '61), <피아니스트를 쏴라>(Tirez sur le Pianist '60),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A Bout de Souffle '60), 레네의 <작년에 마리엥바드에서>(L'annee derniere a Marienbad '61) 등이 있다.
대개의 새로운 물결의 작가들은 각자의 지향하는 바에 따라 작품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하지만 그들이 세계영화에 끼친 영향이 지대함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한 예로 미국과 독일의 영화에서 전통과 관습적인 제작에서 벗어나 '작가의 영화' 운동을 일으키는 원동력을 제공한 것이 바로 새로운 물결의 영향이라 하겠다.



서부영화 (western film)

19세기 후반, 미국의 서부개척시대를 배경으로, 법을 준수하는 강인한 개척자와 이를 파괴하려는 악당과의 대결을 그리는, 미국에서 가장 두드러진 장르 영화. 서부영화의 영웅은 악과 맞서서 불굴의 용기로 명예와 의무를 지킨다. 악당과의 공통점은 둘 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총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또한 이러한 대결과 함께 열차, 말, 포장마차 등이 보편적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서부영화가 관객에게 어필되는 이유는 신나는 액션, 로맨틱한 배경,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플롯 등 때문이다. 그러나, 근자에는 단순한 표피적인 내용에서 벗어나 서부개척시대에 개척자와 기병대들이 인디언들에게 범했던 악행 등을 다룬 진지한 서부영화(serious western)나 악한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반영웅 서부영화(anti-hero western)를 제작하여 역사와 사회적인 문제의식까지 노출시키고 있다.



서브 텍스트 (subtext)

언어, 플롯, 등장인물, 영상 따위의 표면적인 텍스트의 저변에 자리하면서 극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개념들. 따라서 서브텍스트는 그 의미를 명백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내포적이며 이는 곧 전경화되지 않은 영상이나 영상내의 여러 요소들, 또는 배경음향을 통해 테마가 전달되거나 텍스트상의 테마를 돕는다. 이를테면 베르히만(Ingmar Bergman)의 <처녀의 샘>(The Virgin Spring '59)은 소녀의 강간과 그녀의 아버지의 복수를 주요 테마로 다루고 있는 동시에 이교주의를 극복하고 민음을 지키려는 기독교 신앙의 투쟁을 서브 텍스트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서사영화 (epic film)

대하적인 서술형식과 영웅적 행위를 특성으로 하는 영화양식. 개개 전설적이가나 역사적인 사건을 모험하는 한 사람의 영웅이나 일련의 영웅들을 중심으로 하여 웅장한 규모의 이야기가 삽화적으로 전개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자신이 속한 시대나 사회, 혹은 국민을 파멸시키는 전쟁, 격투, 파괴, 죽음 따위의 거대한 장벽을 무너뜨리고 승리를 쟁취하는 인간의 영웅적인 행위와 능력이 스펙터클하게 제시되어 관객의 감동을 자아낸다. 반면에 전형적인 악한이나 폭군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연대기적이며 웅장한 규모로 묘사하는 유형도 있다. 고아조니(Enrics Guazzoni)의 <쿼바디스>(Quo Vadis '12)이래 오늘날까지 영화의 주요 인기 장르로 제작되고 있다. 그리피스(D.W. Griffith)의 <국민의 창생>(The Birth of nation '15), 플래밍(Victor Fleming)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 '39), 린(David Lean)의 <닥터 지바고>(Dr. Zhivago '65) 등이 대표적이다.



서스펜스 영화 (suspense film)

이야기의 중심이 위기에 빠진 주인공에 집중되어 관객으로 하여금 극조의 불안과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유형의 영화. 스릴러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플롯은 문제해결을 향해 점진적으로 전개되지만 예기치못한 사건의 전개로 관객의 긴장감을 유발시키며 따라서 관객이 감상중에 판단하는 것과는 달리 의외의 결과로 결말지워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유형의 장르는 조명의 경우 강한 명암대비를 사용하여 긴장과 불안을 증대시키며 간결한 대사가 주류를 이룬다.



설정화면 (establishing shot)

시퀀스의 시작부분에서 향후에 진행될 이야기를 위해 장소나 무대, 또는 극적인 분위기를 예시해주는 화면으로, 대개 원사나 전사로 나타난다. '언제 어느 곳에'라든가 '한편...' 등의 문학적 표현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관객으로 하여금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향후의 구체적인 묘사를 혼란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기능을 지닌다. 한편 일정한 전개 후 다시 이와같은 화면이 나타나는 것을 재설정화면이라 한다.



성격배우 (character role)

캐릭터 액터(character actor)라고도 한다. 세련되고 원숙하며 개성적인 연기가 요구되는 역할, 특히 독특한 개성을 지닌 등장인물을 적절히 소화해 내는 각별한 연기자를 가리키는 말로서 인기 스타나 경력이 짧은 연기자가 아니라 다양한 연기 경험을 지닌 노련한 연기자와 특별한 유형에 속하는 연기자, 그리고 그만이 해낼 수 있는 역할을 가리킨다.



스위시 팬 (swish pan)

장면 전환 기법의 하나. 화면내의 한 지점에서 다음 지점으로 이동한 촬영기의 팬이 급속히 진행됨으로써 중간의 영역이 흐리게 보이는 것. 이때의 팬은 한 장면 내의 시점 이동일 수도 있고 이 효과를 이용한 두 화면의 편집일 수도 있지만 양자 모두가 장면 전환의 효과를 준다는 점에서 같다고 할 수 있다. 플래쉬 팬(flash pan), 블러 팬(blur pan), 플리크 팬(flick pan), 휘프 팬(whip pan), 지프 팬(zip pan) 이라고도 한다.



스파게티 웨스턴 (spaghetti western)

몇몇의 미국 연기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탈리아의 연기자들을 고용하고 또 이탈리아나 스페인에서 제작하여 영어로 더빙한 서부영화. 1960년대에 셀지오 레오네(Sergio Leone)에 의해 제작되어 흥행적인 성공을 거두어 붙여진 이름이다.



슬레이트 (slate)

촬영 장면의 내용을 간략하게 기록한 소형의 검은 칠판. 여기에는 각 장면의 정보내용인 제목, 감독, 촬영기사, 롤 번호, 장면 번호, 촬영회수, 날짜 등등이 기록되어 있어 이후 편집단계에서 효율적으로 작업할 수 있도록 한다. 동시녹음시 사운드와 화면의 동조를 맞추는데 필수적인 장비이다. 클래퍼 보드(clapper board), 클랩스틱 보드(clapstic board), 슬레이트 보드(slate board)라고도 한다.



시네마 스코프 (cinemascope)

원래는 1950년대에 20세기폭스사가 개발한 상표명이었으나 이후 촬영과 영사에 애너모픽 렌즈를 사용하는 대형화면 방식의 대명사로 알려지게 되었다. 씨네마 스코프에 의한 영화의 화면 비율을 2.66:1에서 1.66:1까지 다양하지만 모두가 애너모픽 렌즈와 35mm 필름을 사용하는 공통점이 있다. 원리는 촬영시에 애너모픽 렌즈를 이용하여 압축하여 촬영한 다음, 영사시에 다시 애너모픽 렌즈를 이용, 다시 확대 영사하는 것이다.



시네필 (cinephile)

영화 애호가, 영화광, 영화인 등의 의미.phile은 사랑한다는 의미.



시점 (point of vew)

관객과의 상대적인 위치에 있는 카메라의 촬영되는 소재와의 객관적 주관적 상호관계를 지칭하는 용어. 객관적 시점(objective point of view)은 감독이나 카메라가 촬영장면의 액션에 관여함이 없이, 또는 직접 참가하지 않고 객관적 관찰자의 입장에 서는 시점을 말하며 주관적 시점(subjective point of view)은 액션에 직접 참가하여 등장인물의 시점을 대변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1.방문을 열고 들어선 등장인물이 방안을 둘러보려는 순간에 커트되면 2.그 인물의 입장에 서서 촬영했기 때문에 장면에는 방안의 모습이 나타날 경우를 말한다. 3.다시 그 인물의 모습으로 돌아가 어떤 표정, 제스처 등의 반응을 나타냈다면 이 때를 반응장면이라 하는데, 1.어떤 인물의 대사나 행위에 대해 2. 상대방의 경악스런 표정으로 커트되었다면, 그리고 동시에 먼저 인물의 시점에서 상대방의 표정을 보는 어깨너머 화면이라면 이때의 반응장면 역시 주관적 시점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서술의 담당자라는 측면에서 시점을 분류하면, 먼저 일인칭 시점(first-person point of view)은 작품의 주인공을 통해 이야기하는 경우로, 인물의 시점과 서술의 시점이 일치한다. 일인칭 관찰자 시점(first-person-observer point of view)은 화자가 관찰자인 경우로 작품속의 주인공이 아닌 인물이 그 주인공의 이야기를 하는 형식을 취한다. 삼인칭 관찰자 시점(director-observer point of view)은 작가가 관찰자이므로 객관성이 가장 중요시되며, 상기한 객관적 시점은 이것을 말한다. 전지적 작가 시점(omniscient-director point of view)은 작가가 전지적 입장에서 작중인물의 심리묘사, 행동동기, 감정 등을 해석도 분석도 할 수 있는 시점으로 객관적, 주관적 시점 모두를 사용한다. 이와는 달리 관객(따라서 카메라)과 피사체의 거리에 따라 먼 것은 원격 시점(distant point of view)이라 하여 원사 따위를 지칭하고 가까운 것은 근접 시점(close point of view)이라하여 접사 따위를 지칭하기도 한다. 결국 모든 영화는 이러한 다양한 시점의 복합적 형태로 표현된다고 볼 수 있다.



시점화면 (point of view shot)

일명 포브(POV), 또는 피 오 브이 쇼트(P.O.V. shot)라고도 한다. 카메라가 등장인물의 시점으로 촬영한 장면. 따라서 관객은 등장인물의 시점에서 그 화면을 주시하게 된다. 주관적 시점의 별칭이기도 하면서도 더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시주러 (caesura)

본래는 행간의 역동적인 휴지(쉼)를 뜻하는 문학용어. 시에서의 시주러는 리듬상의 발전을 변화시킴으로써 싯구의 강세를 강화시키는데 사용된다. 이를 에이젠슈타인이 편집에 적용함으로써 최초로 영화적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그는 이것을 장면의 충돌이라는 몽타쥬 개념에 적용함으로써 이른바 리듬의 단절을 시도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전함 포템킨>(The Battleship Potemkin '25)은 연속되는 행위에 리듬상의 대조를 주기위해 각각의 막 사이에 시주러를 사용했다. 극도로 흥분한 폭도들의 행동 뒤에 해안을 유람하는 군함의 서정적인 장면을 연결시켜 휴지부로 사용되도록 한 것이다.



시퀀스 (sequence)

장소, 액션, 시간의 연속성을 통해 하나의 에피소드를 이루는 이야기가 시작되고 끝나는 독립적 구성단위. 일련의 신이 보여서 하나의 시퀀스가 된다. 전통적으로는 페이드 인으로 시작하여 페이드 아웃 따위의 광학효과로 끝나는 에피소드적 단위를 지칭했으나 오늘날에는 근거가 미약하다. 예를 들어 어떤 영화의 "추적 시퀀스"라는 말은 추적 장면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여러가지 씬들, 즉 도로 신과 자동차 신, 건물 내부 신 등...들이 하나의 추적 시퀀스를 형성하게 된다.



신 (scene)

1.영화를 구성하는 단위중의 하나로서 동일장소, 동일시간 내에서 이루어지는 일련의 액션이나 대사, 일반적으로 쇼트와 시퀀스의 중간 길이에 해당하며 통계적으로는 영화 한 작품(90분)의 경우 약 120개 내외의 신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는 것이 통례이지만 작품에 따라서는 이 수치의 변화가 심하다. 때로는 우리말의 장면에 해당하는 포괄적인 의미로도 쓰이는데, 이를테면 쇼트, 테이크, 시퀀스, 에피소드, 제스처 또는 특정한 커트나 정서를 환기시키는 특수한 순간 등등이 그것이다.
2.특정 화면이나 일련의 특수촬영을 위해 준비되는 세트.



뉴 아메리칸 시네마 (new american cinema)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에서 만들어진 전위영화, 실험영화들을 말한다. 뉴 아메리칸 시네마라는 명칭은 1960년대에 결성된 신미국영화집단(new american cinema group)에서 유래한 것이고 메카스(Jonas Mekas)와 그의 잡지 "영화문화"(Film Culture)에 의해 널리 전파되었다.
뉴 아메리칸 시네마는 기존의 상업영화의 주제, 기교 모두에 대한 거부반응으로 탄생한 운동이다.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작가들은 영화산업의 외부에서 독립적이며 저렴한 제작비를 투입하여 영화산업적 배급, 흥행의 도움없이 각자의 작업을 개인적이며 대담하게 전개해 나갔다. 그들은 주로 16mm 필름을 사용하였으며 소형영화와 비디오 테이프도 역시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이들의 작업은 뉴욕시에 있는 일종의 전위영화 박물관인 영화선집기록 보관소(Anthology Film Archieves)의 메카스에 의해 주도되는데 이 그룹의 가장 의미있는 작업을 이루게 되었다. 이러한 영화제작의 또다른 중요한 후원으로서는 역시 메카스에 의해 구성된 전위영화제작자 모임인 뉴욕 영화가 조합(New York Filmmaker's Cooperative)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캐년 시네마(Canyon Cinema)의 역할을 들 수 있겠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2차대전중의 데렌(Maya Deren)의 영화로 뉴 아메리칸 시네마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그녀의 잘 알려진 영화 <오후의 올가미>(Meshes of the Afternoon '43)에서는 주관과 객관적 사실성 사이의 벽을 허무는 개인적인 몽상적 영상으로 처리하였다. 하지만 이 운동은 1960년대의 극심한 격동기 동안의 실험영화의 활기찬 발전과 더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기존의 사회적, 미적 가치에 대한 자유분방함과 조소, 그리고 내용과 형식에 대한 극단적인 언급 등은 부분적으로는 당시의 사회적, 정치적 문제의 결과이기도 하다.
시트니(Adams Sitney)는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경향을 영화자체의 표현방법 - 빛과 어두움, 깜박거림, 개별적 프레임 등 - 에 관심을 갖는 그래픽 영화와 꿈과 상징들을 다루는 주관적 영화로 구분하였다. 편의상 그래픽 영화 그룹으로는 스미스(Harry Smith), 벨슨(Jordan Belson), 브리어(robert Breer), 드리고 밴더빅(Stan Vanderbeek) 등을 들 수 있겠고, 주관적인 영화 그룹으로는 앵거(Kenneth Anger), 브래키지(Stan Brakhage), 그리고 마크폴라스(Gregory Markpoulas) 등을 들 수 있겠다. 또 시트니는 "비저너리 시네마"(Visionary Cinema)에서 형식주의적인 그래픽 영화와 낭만주의적인 서정영화를 결합한 형태로서 구조영화(structual film)를 정의하였는데, 그것은 내용은 무시하고 단지 카메라의 매개만으로 의식의 상태를 상기시키는 영화의 전체적 형상에 대해 강조하였다.
이 그룹의 다른 작가들로는 스노우(Michael Snow), 플램톤(Hollis Frampton), 그리고 샤티스(Paul Chartis) 등을 들 수 있다.



뉴 저먼 시네마 (New German Cinema)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독일에서 발흥하였던 새로운 영화운동. 그 기원은 1962년 오버하우젠 영화제(oberhausen film festival)에 참여하였던 26명의 젊은 작가와 감독들이 모여 발표하였던 오버하우젠 선언이다. 이들은 이 선언에서 관습적인 영화산업구조로부터의 탈피와 현시대와 사회에 대한 깊은 관심을 부르짖으며 기성영화의 종말을 선고하였다.
이 선언에 관심을 가진 연방정부에서 지원책을 마련하였으며, 1968년에는 베를린에 영화인 양성을 위한 영화연구소를 설립하였다. 또한 TV에서는 신인감독들에게 제작비를 지원해주었다. 그 결과 국제적으로 관심을 끈 작품들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쉴렌도르프(Volker Schlondorft)의 <젊은 퇴를레스>(Der junge Torless '66)와 클루게(Alexander Kluge)의 <어제의 소녀>(Abschied von Gestern '66)가 선두주자였다. 이들 이외에도 샤모니(Ulich Schamoni), 라이츠(Edger Reitz), 슈트라우브(Jean-Marie Straub), 프리츠(Rodger Fritz), 폴란드(Hansjurgen Pohland), 트램퍼(Will Tremper) 등이 나름대로 자신의 위치를 굳히기 시작하였다.
이 운동의 절정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였다. 파스빈더(Rainer Werner Fassbinder), 헤어조크(Werner Herzog), 벤더스(Wim Wenders) 등이 새로운 물결을 주도하면서 세계영화사에 그 두각을 나타낸 것이다. 이들의 철학이나 스타일은 각기 너무나 다양해서 특정 이데올로기나 주제를 찾기가 어렵다. 벤더스는 산업사회에서 소외되어가는 인간의 비극을 주로 다루었고, 파스빈더는 이 시대와 사회에 대한 염세주의적 허무주의를 바탕으로 하여 그 갈등이 반항과 폭력으로 격화되어가는 비극을 그렸으며, 헤어조크는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해방을 주로 다루었다. 이처럼 뉴 저먼 시네마는 에꼴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새로운 사회의식을 다양한 표현방식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독일 내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한 획을 그었다고 볼 수 있다.



네오 리얼리즘 영화 (italian neorealism)

2차대전 직후인 1945년 경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 이태리에서 성행했던 영화조류. 평론가이며 이론가인 피에트 란젤리(Antonio Pietrangeli)와 바바로(Umberto Barbaro)가 비스콘티(Luchino Viscont)의 <강박관념>(Ossessione '42)이후에 발표된 일련의 새로운 영화적 경향을 지칭하는데 사용한 용어이다. <강박관념>은 케인의 소설인 <우편부는 항상 벨을 두번 울린다>를 각색한 것으로서, 비스콘티 자신이 영화수업 시절에 조감독을 지낸 바 있던 르노아르(Jean Renoir)에게서 받아 이탈리아를 무대로 하여 영화화한 작품이다. 이어 데시카(Vittorio De Sica)의 <아이들은 보고있다>(I Bambino Ci Guardano '43) 등 동일한 경향의 영화들이 다소 제작되어 이후의 분출에 토대를 형성했다. 그러나 당시까지도 전쟁중이었기 때문에 널리 상영되지는 못했고, 따라서 전후 발표된 로셀리니(Roberto Rossellini)의 <무방비 도시>(Roma Citta Apperta '45)가 이 사조를 국제화시킨 최초의 작품이 되었다. 한편 네오리얼리즘의 경향은 영화 외적으로는 미국과 프랑스의 자연주의 문학이나 자국의 사실주의와 진실주의 문학의 영향을 받았고, 영화 내적으로는 1910년에 이탈리아의 사실주의 영화 경향에서 강하게 예시되었으며 프랑스의 시적 사실주의 등에서도 이미 두드러졌던 경향이었다. 다만 40년대의 이탈리아에서 좀 더 의식적이며 야심에 찬 스타일로 개화되었다는 점에서 각별한 시선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들 작품에는 로셀리니의 <파이자>(Paisa '46)와 <독일0년>(Germania Anno Zero '47), 데시카의 <구두닦이>(Sciuscia '46)와 <자전거 도둑>(Ladri di Biciclette '48), 베르가노(Aldo Vergano)의 <절규>(Il Sole Sorge Ancora '47), 라투아다(Alberto Lattuada)의 <무정>(Senza Pieta '48), 제르미(Pietro Germi)의 <마피아>(In Nome Della Speranza '50), 그리고 산티스(Giuseppe De Santis)의 <쓴 쌀>(Riso Amaro '49) 등이 대표적이다.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기법과 주제는 먼저 잘 짜여진 스튜디오 영화나 해피엔딩에 대한 거부였고, 따라서 사회의식에 입각하는 한편, 현지촬영과 현지인 등의 비직업 배우에 치중하여 평범한 노동자들의 간단하며 담담한 이야기에 주력했다. 스타일 면에서도 역시 전후 이탈리아의 사회, 경제적인 불안정을 숨쉬는, 일상인들의 숨김없는 현실을 포착하려 애썼고, 다라서 아무런 인공적 무대장치가 없는 시내나 농어촌의 자연상태에 카메라를 들이대었다. 그러므로 사전에 엄밀히 구조된 이야기가 아니라 촬영중에 자연스럽게 창조되는, 이른바 '체험되는 이야기'(found story)의 형식이나 또는 '인생유전영화'의 스타일을 구사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이러한 현상의 배후에는 전후 이탈리아 영화계가 봉착한 자본과 설비의 부족이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파괴된 도시에 남아있는 기자재나 필름, 조명 등의 여건이 심히 비관적인 상황이었을 뿐만 아니라 재정의 빈곤과 함께 도저히 정상적인 극영화를 제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연적 체험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삶을 담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전후의 이탈리아가 비약적으로 재정부흥함에 따라 이들 네오 리얼리즘 영화의 제경향이 상실되어간 소이와 그 기간의 단속성 또한 이해할 수 있다. 예컨대 산티스의 <쓴 쌀>이 네오 리얼리즘의 마지막 성공작이었다고 할 때, 이는 대중적인 호응도, 멜로드라마, 글래머 스타의 기용을 통해 네오 리얼리즘을 널리 일반화시켰으나 그 반면에 뛰어난 영상적 스타일과 사회의식은 점차 통속화됨으로써 한 분계점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1950년데 들어서면서 부터 네오 리얼리즘의 독특한 성역은 상업화의 물결과 오버랩되고 이윽고는 '장미빛 리얼리즘'(Rosy Realism)이후 확연한 불화상태에 접어들어 사실상의 네오리얼리즘은 끝나고 있었다. 그러나 전후 세계영화사에 미친 영향은 대단한 것이어서 전 세계의 어느 개인 어느 사조를 막론하고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영향을 받지 않은 바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실험영화 (experimental film)

영화가 지닌 독특한 표현력을 천착하여 창의적이고도 독창적인 실험과정을 통해 제작하는 영화작품들의 총칭. 1920년대 유럽의 전위영화를 기조로하여 근자의 신미국영화에 이르는 새로운 형태의 전위적 영화운동 전반을 지칭하는 용어이지만, 사적인 면에서는 유럽의 전위영화가 일단의 종말을 고한 뒤 20년대 말부터 미국에서 새롭게 시작되어 50년대 후반의 지하영화와 합류되기까지의 기간을 가리키기도 한다. 따라서 실험영화란 유럽의 뒤를 이은 미국적 전위영화로서 30년대와 40년대의 기간동안 존속했던 특정 조류인 동시에, 이후의 지하영화, 확대영화, 신미국영화 등으로 발전해 갔다는 점에서 전후의 모든 새로운 영화경향의 근간이 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최초의 전위영화는 현대파 화가인 실러(Ckarles Sheeler)와 스트랜드(Paul Strand)의 공동작품인 <맨해타>(Manhatta '21)>로서 뉴욕을 노래한 월트 휘트만의 시를 영상시적으로 옮긴,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영화였다. 이로부터 이후의 몇몇 실험영화까지는 모두가 유럽의 전위영화, 특히 델(Louis Delluc)의 포토제니(Photgenie) 이론과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사실상의 최초의 전위영화는 와트슨(James Sibley Watson)과 웨버(Melville Webber)의 공동작품인 <어셔가의 몰락>(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 '28)이었으며, 1933년에는 이들에 의해 최초의 유성 실험영화인 <소돔의 운명>(Lot in Sodom)이 발표되었다. 이후 미국의 실험영화는 경제 대공황으롱 인해 침체기를 맞게 되는데, 이들의 기술적 미학적 수준은 유럽의 전위영화에 비해 별다른 평가를 받지 못했으나, 반면에 미국적인 스타일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이후의 발전단계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미국의 실험영화가 다시 개화하여 한 정점을 이룬 것은 1940년을 전후하여 16mm가 세계적으로 보급되면서 부터였다. 서부에서는 각기 개별적으로 추상영화를 제작해왔던 휘트니(John Whitney), 스미스(Harry Smith), 벨슨(Jordan Belssn) 등이 1947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사회 및 심포지움을 개척하였고, 동부에서는 절대영화의 창시자인 리히터(Hans Richter)가 나치스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직후 2년간(1944-1946), 마찬가지로 이민해온 듀상(Marcel Duchamp), 레제(Fernand Leger), 그리고 미국인인 캘더(Alexander Calder) 등과 함께 열련의 실험영화를 제작하였다.
이들의 작품은 독일의 표현주의, 러시아의 몽타쥬, 프랑스의 트릭촬영과 포토제니 등의 총체적 영향을 받아들여 꿈, 시적 영상, 심리적 비도덕성, 에로틱한 상징, 성적 환상에 대한 초현실주의적인 경향을 띠었다. 데렌(Maya Deren)의 <카메라를 위한 율동연구>(A Study in Choreography for the Camera '45)와 <오후의 올가미>(Meskes of the Afternoon '49), 앵거(Kenneth Anger)의 <불꽃놀이>(Fire-Work '47), 마르코폴로스(Gregory Markopoulos)의 <프시케>(Psycke '48)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마야 데렌은 실험영화로는 최초로 대중적인 호응을 얻은 영화작가였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이들 초기의 실험영화들이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는데, 그 원인으로는 첫째 16mm의 배급과 상영이 일반화되어 있지 못했고, 둘째로는 그 내용이 지국히 개인적이어서 이해가 곤란했으며, 세째로는 진보적인 소수집단만의 감상이었던 점 때문이었다. 이들의 진정한 영향력은 1950년대 중반 이후에 직접적인 계승자라 할 수 있는 지하영화에 와서야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초기의 활동들, 특히 한스 리히터를 중심으로한 실험영화들이 종래의 무성에서 유성으로, 단편에서 장편으로 점진적 변형을 꾀함으로써 이후의 새로운 영화발전에 주춧돌이 된 점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이 실험영화란 역사적으로나 양식적 특성으로나 영화의 새로운 미학의 발견에 근간이 되는 시도를 말하는데, 이를 가능케한 원인으로는 무엇보다도 16mm 필름과 카메라, 소형의 녹음기재 등의 개발을 들 수 있다. 따라서 이와 함께 전후의 새로운 사조가 낳은 젊은 영화작가들이 구습 즉, 상업영화에 예속된 양식의 고착화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실험을 영화에 쏟아 넣었다는 사실이 이후의 새로운 영화로 나아가게 한 원동력이었다.



H M I

밝은 일광과 유사한 조명효과를 주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램프. 할로겐 금속 요드화물(Halogen-Metal-Iodide) 램프의 약자다. 최근에 개발된 이 램프는 동일한 전원 공급시 텅스텐 램프보다 3배나 더 밝으며 텅스텐 램프의 경우 일광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이색성 필터나 혹은 여타의 특수 필터가 필요하지만 HMI 램프는 필터 없이도 충분한 일광효과를 낼 수 있다.



영화비평 (film criticism)

영화연구는 네가지 범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비평(criticism), 영화사(history), 방법론(methodology), 이론(theory)이 그것이다. 영화비평은 작가와 수용자의 양면에 그 영향을 미친다. 첫째 작품의 내용과 창조적 표현정도를 평가하며, 둘째 수용자에게 가치판단의 기준을 마련해 줌과 동시에 수용의 폭을 넓혀주며, 세째 궁극적으로는 작품이 지닌 역사성이나 사회적 상황을 분석하여 영화의 시대적 흐름을 선도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영화비평은 구체적으로 영화적 관점(cinematic perspective)과 비영화적 관점(noncinematic perspective)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수 있다. 영화적 관점은 영화작품 그자체를 하나의 텍스트로 보고 분석을 행하는 것으로, 형식(form), 양식(mode), 주제와 소재(subject - matter) 등에 관한 분석이 이루어 진다. 비영화적 관점은 영화외적인 시야, 즉 철학, 사회학, 심리학, 미학, 등의 관점에서 작품 또는 작가의 사회성이나 역사성, 정신세계 등을 분석한다.
영화비평은 2차대전 후에 전문화, 보편화가 동시에 이루어졌는데, 그 이유는 각종 저널 및 전문지가 다양하게 탄생하였으며, 작가론, 영화 기호학 등의 영화이론과 유기적 관계를 이루며 꾸준히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오날날에는 역사비평(historical criticism), 장르비평(genre criticism), 여성비평(feminist criticism), 구조주의 비평(structural criticism), 정신분석학적 비평(psychoanalytic criticism) 등으로 세분화 되기에 이르렀다.



영화사회학 (film sociology)

일반적인 사회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영화사회학은 영화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연구를 다룬다. 한 나라의 사회구조는 영화의 제작, 배급에서 관객의 관람행위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영화사학자들은 영화의 사회적 기능을 순수한 선전으로서의 기능, 사회적 가치확립의 기능, 사회 변화를 선도하는 기능으로 나누어 파악하고 영화사를 서술해나가는데, 영화사회학에서는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사회, 정치적 반영 및 효과와, 뉴스나 정보 등의 교육적 기능, 그리고 대중오락으로서의 기능에 관하여 연구한다. 영화사회학 연구의 기원은 발라즈(Bela Balazs)의 <시각적 인간과 영화문화>(Der Sichtbore Meusth oder die Kultur des Films '24)로 본다. 발라즈는 이 글에서 영화에 의해 새로운 시각적 인간이 태어난다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오랜 옛날부터 인간의 정신이나 영혼을 그림이나 조각으로 묘사하였으나, 인쇄술의 발달과 더불어 인간의 정신과 영혼의 표현이 언어로 집중되었다는 것이다. 이로인해 표현할 수 없었던, 따라서 좁아졌던 인간정신의 세계를 20세기의 영화를 통해 회복, 확대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독일의 비평가 발터 벤야민은 1936년에 발표한 <복제시대의 예술작품>(Das Kunstwerk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에서 사진과 영화를 복제예술이라는 관점에서 고찰하였다. 복제예술이란 기계적인 수단에 의해 얼마든지 복제가 가능하며, 원본과 복제본의 구본이 있을 수 없는 예술로, 과거 지배계급에 독점적이었던 예술의 향수를 일반 대중에 까지 확대시켰으나, 예술의 질적인 성격을 변화시켰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영화가 지니는 커뮤니케이션의 기능을 사회와 인간의 사유방식에 연관시켜 설명한다. 즉, 소설은 근대의 개인주의적 사유방식에 대응하는 장르이고, 영화는 고대의 집단적 사유방식에 대응하는 장르로 보는 것이다.
근자에 이루어지는 실제적인 측면의 영화사회학은 영화산업과 그에 관련되는 자본, 정치, 대중의 관계와 영화가 사회 전체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에 미치는 영향 등을 연구한다. 이 때문에 경제학, 심리학, 정치학 등의 관점을 통합하여 새로운 독자적인 방법을 추구해 나가고 있다.



영화심리학 (film psychology)

영화심리학은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 연구되어 왔다. 그 하나는 영화의 지각겸험에 관한 게쉬탈트 심리학의 측면으로 특히 인간이 운동을 느끼게 되는 파이현상(phi phenomenon)과 시각의 지속성(persistence of vision)의 두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지각심리학을 전개시켜 나간다. 또 하나의 측면은 작가와 그의 작품 속의 인물들의 심리상태와 관객의 반응 등을 시대적, 사회적 상황과의 상관관계에 두고 분석하는 사회심리학적인 측면이다.
게쉬탈트 심리학적인 입장에서 영화의 지각 경험을 서술해나간 것은 1916년 뮌스테비르크(Hugo Munsterberg)의 <영화극 : 심리학적 연구>(The Phoplay : A Psychological Study)가 최초의 연구서였으며, 1933년 아른하임(Rudolf Arnheim)이 <예술로서의 영화>(Film as Art)로 그 뒤를 이었다. 사회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영화를 분석해나간 최초의 연구서는 1947년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가 발표한 <칼리가리에서 히틀러까지 : 독일영화의 심리적 역사>(Psychological History of the German Film)이다. 그는 이 책에서 1차대전에서 2차대전에 이르는 독일의 사회심리적 동향을 당시의 독일영화의 형식과 내용 분석을 통하여 밝혀냈다. 또한, 작가의 의도가 그러한 시대배경하에서 어떻게 변질되었는가 하는 것을 규명해 냈다. 또한 1950년에는 미국의 볼펜시타인(M. Wolfenstein)과 라이츠(N. Leites)가 <영화 : 심리학적 연구>(film Psychological Study)에서 영화작품의 예술적 가치나 등장인물의 성격, 인간관계의 유형을 분류하고 정신분석학적 고찰을 행하였다.



영화언어 (film language)

영화를 언어의 개념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러시아의 몽타쥬 이론에서 부터였다. 에이젠슈타인, 푸도프킨 등은 장면의 연결을 통해 관념, 의미가 창조된다고 보고 이를 언어와 비교하였다. 이후 발라즈(Bela Balazs), 에프스탕(Jean Epstein) 등도 영화의 언어성을 논하였으며, 레이몬드 스포티우드, 마르텡(Marcel Martin) 등도 영화언어의 문법적 체계를 밝히려 하였으나, 이들 모두 과학적인 분석의 체계는 이루지 못했다. 또한 콕토(jean Cocteau, "영화는 영상에 의한 언어이다.")와 아르누(Alexandre Arnou, "영화는 영상의 언어이며, 그 자신의 어휘, 문장 구성법, 변화, 생략, 문법 등을 가지고 있다.") 등이 영화를 언어로 단정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 영화 기호학이 나오기 전까지 영화의 언어에 대한 논의는 에세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영화를 언어로 보고 체계적으로 분석을 시도한 영화기호학은 소쉬르의 언어학을 기원으로 메츠(Christian Metz), 바르트(roland Barthes), 에코(Umberto Eco) 등이 영화언어에 천착하면서 체계화되었다. 이들은 소쉬르의 분류법에 따라 랑가쥬(langage)를 랑그(langue)와 빠롤(Parole)로 분류하고, 영화가 랑가쥬인가 랑그인가 하는 문제를 논의하였다. 소쉬르에 따르면 랑가쥬란 의사소통을 하는 인간의 언어활동 능력을 말하며, 랑그란 약호(code), 즉 영상이나 개념의 약속체계를 가진 언어의 규칙체계를 말하며 빠롤은 개인의 언어구사양식을 말한다. 결과적으로 메츠는 영화를 '랑그가 없는 랑가쥬'라고 보았으나, 오늘날에는 여러가지 코드가 혼재해 있는 랑가쥬라고 보는 견해가 보편화되었다. 이러한 견해를 바탕으로 영화는 비로소 언어로서의 분석이 가능해 졌다고 볼수 있다.



영화의 눈 (kino-eye)

영화의 1차적 의미는 사실성에 있으므로 허구가 아닌 리얼리티의 수용체로서 영화를 인식해야 한다는 주의, 주장. 1919년에 베르토프가 그의 저서 <영화의 눈을 위한 혁명 선언문>에서 극영화의 결점과 허구성을 비판하는 한편, 실제 생활의 모습을 담은 새로운 사실의 프포르타쥬를 주장한 이래 공식적인 개념으로 발전되었다. 자신의 생각을 확장시켜 1922년에 영화의 눈 운동을 내세운 베르토프는 카메라의 눈이 인간의 눈보다 완벽하며, 따라서 사건을 받아들이고 기록하는 능력에 있어서도 월등하다고 역설하였다. 그는 자신의 지론을 실천에 옮겨, 아내와 동생과 함께 <무비 카메라를 든 사나이>(The Man with a Movie Camera '28) 등의 많은 기록영화를 제작하는 동시에 '키노 프라우다'라는 잡지도 발간하여 이론과 실천의 양면에서 의욕적으로 활약하였다. 반면에 그의 이론은 여하한 사실의 솔직한 기록에도 불구하고 편집 단계에서의 인위성이 개입한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를 남겼고, 또한 30년대의 형식주의 논쟁으로 소멸되어 갔다. 그러나 그의 이론적 독창성은 러시아 몽타쥬 이론, 영국의 기록영화, 아스트(Alexander Astruc)의 카메라 만년필설, 선전영화, 그리고 현대의 씨네마 베리떼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영화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씨네 아스트 (cineaste)

영화작가나 제작자를 뜻하는 프랑스어에서 유래된 용어. 그러나 지금은 일반적인 영화인을 의미하여 나아가서는 평균적인 영화 애호가보다는 훨씬 열광적이고 진지한 관객이나 영화학도도 포함된다.



영화적 시간과 공간 (cinematic time and space)

영화에서의 시간과 공간은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실제 세계의 그것과는 많은 차이를 나타낸다. 그것은 일면 실제보다 더욱 제한되어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 실제 세계를 포함하여 - 어떤 예술매체보다도 자유롭게 활용될 수 있는 융통성 또한 지니고 있다.
영화적 시간은 실제 세계의 정상적인 시간의 흐름과는 다른, 영화속에서 존재하는 사건의 순서와 배열에 따라 창조되는 시간이다. 영화에서는 다음의 5가지 방식에 의해 새로운 시간적 질서를 창조해 낸다. 1.따로 촬영된 액션들이 스크린상에 동시에 보여지거나 하나의 시퀀스내에 보여진다. 2.중요한 신과 시퀀스 사이에 중요하지 않은 시간 부분을 제거한다. 3.동작의 일부를 생략하여 신내의 시간을 줄이거나, 동일한 동작을 각기 다른 각도와 거리로 찍은 쇼트들을 추가하여 신 내의 정상적인 시간을 연장시킨다. 4.과거 장면이나 미래 장면을 통해 연대기적 내러티브 시퀀스에 관해 시간상으로 전진, 후진한다. 5.음대의 특정 부분과는 다른 시간대의 영상이나 서로 다른 시간대의 영상의 중첩 등을 통해 대위법적인 영화적 시간을 창조해낸다.
영화적 공간은 실재하는 공간과는 달리, 영화속의 스크린에서 창조되는 공간이다. 영화적 공간이 실제 공간과는 다른 점은 첫째 스크린에 존재하는 공간은 2차원 공간이며, 대상에 대한 크기의 지각을 변화시키고 평면화된 영상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이유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실제 공간을 연상시키는 외부 세계의 영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프레임의 구도, 특정 렌즈, 카메라 움직임, 편집 등을 사용한다. 둘째, 다른 장소에서 찍은 장면들을 모아서 편집한 쇼트들은 전혀 새롭고 통일된 공간을 만들어낸다. 셋째 어떤 대상을 접사 등을 통해 실제의 크기보다 확대시킬 수 있다. 넷째 실제 세계와 외부세계는 연속적인 것으로 여겨지지만 영화에서는 편집을 통해 공간을 뛰어넘을수도 있고, 서로 다른 거리와 각도를 통해 동일한 공간을 볼 수도 있다. 또한 편집을 통해 공간의 원근관계를 축소, 확대시키기도 한다.



영화학 (filmology)

영화가 탄생한 이후로, 영화는 여러가지 관점과 방법으로 연구되어 왔다. 영화가 지니는 예술적, 사회적, 경제적 성격등에 따라 영화미학, 영화 예술학, 영화 심리학, 영화 사회학, 영화 경제학 등이 각기 독자적인 영역을 가지며 발전되어왔다. 그러나, 1950년 후반부터 이러한 영화에 대한 각각의 시점을 영화의 본질에 대한 연구로 통합시킬 필요성이 서서히 부각되었다. 이러한 흐름을 바탕으로 프랑스에서는 코헨시트(G. Cohen-Seat)와 수리오(Etienne Souriau)가 영화학 연구소(Institut de Filmologie)를 중심으로 체계적인 영화학 정립에 나섰다. 구체적으로 영화학 연구소에서는 영상수용의 생리학, 영화의 정신분석 - 사회학, 영화제작의 경제적 콘텍스트, 시각 경험의 현상학, 현실감 등에 관하여 활발히 연구하였다. 코헨시트는 <영화학 세계>(La Revue Internationale de Filmology)라는 잡지를 발행하는 한편 <영화철학의 제원리에 관한 시론>, <영화와 시각정보의 제문제>와 같은 저서를 통해 그의 영화학을 전개하였다. 그는 영화를 두가지의 이론적 관점으로 분류하였는 바, 하나는 미학, 예술학, 예술심리학을 바탕으로 영화를 주체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관점(le fait filmique)이며, 또 하나는 사회학, 사회심리학, 경제학적인 객관적 시점으로 영화를 분석하는 관점(le fait cinematographique)이다.
오늘날의 영화학에서는 크게 나누어 인스티튜션(Institution)과 영상(Image)을 영화학의 근본으로 규정짓고 연구에 임하고 있다. 인스티튜션은 단순한 '기관'이라는 한정된 의미가 아니라 인간의 집단 상호간에 정보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기능으로써의 확대된 의미를 지닌다. 영상은 영화를 표현매체, 즉 존재론적으로 받아들이려는 관점에서 연구되는 분야이다. 전후 최초로 이러한 문제를 거론한 사람은 바쟁(Andre Bazin)이었다. 그는 1945년에 발표한 <사진적 영상의 존재론>이란 글을 통하여, 영화의 기본은 한 장면의 사진에서 출발하며 그 역사적인 의미를 인간의 생명과 츄ㄱ체의 존재론까지 해명할 수 있다고 하였다. 또 모랭(Edga Morin)은 그의 저서 <영화. 상상적 인간>에서 사진적 영상의 특성을 환상과 인간자신 문제와 관련되는 이중성으로 보고 결국 영화학은 인간학으로 나아가게 됨을 암시하였다.
이와같이 오늘날의 영화학은 미학, 예술학, 사회학, 심리학, 경제학 등의 각종 관점에서 다변화되어 왔던 영화이론을 한 곳으로 모아서 영화적 사고에 의한 영화 본질의 연구와 영화이론의 확립을 목적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중이다.



5센트 극장 (nickelodeon)

무성영화 초기에 유행했던 소극장의 한 현태로 창고따위의 공간을 이용했던 영화관. 이때의 입장료가 5센트(nickel)였고 또한 그리스어로 극장을 뜻하는 odeon이 합성되어 5센트 짜리 영화관을 가리켰다.



인본적 사실주의 (humanistic realism)

영화평론가들이 일명, '뉴 아메리칸 휴머니스틱 리얼리즘'이라고 명명한 1960년대의 영화적 경향. <졸업>, <미드나잇 카우보이>, <이지 라이더> 등의 영화가 이 범주에 속한다.
이들의 테마는 모두가 사회로 부터 소외당한 등장인물이나 말썽꾸러기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반영웅의 역할을 담당하는 내용이었다. 잃어버린 세대라 불리우는 전후의 젊은 세대들이 이유없는 반항을 통해 정체되고 권위주의적인 기성사회에 대해 반항하는 것이었다면, 인본적 사실주의의 젊은이들은 히피였고, 월남전이나 성 모럴의 퇴폐 등으로 인한 정치, 사회적 혼란 속에서 자아해방을 갈구한 세대였다. 영화사조인 측면에서는 자국의 실험적인 뉴 아메라칸 시네마와 지하영화의 영향을 받았고, 외부적으로는 긍정적인 인간가치를 추구했던 이탈리아의 네오 리얼리즘의 영향을 받아 진실한 인간적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표를 던진 영화운동이었다.



인상주의 영화 (impressionism)

초현실주의와 더불어 1920년대 프랑스 영화의 주류를 이루었던 2대 조류의 하나. 전후에 전유럽에 범함하던 헐리우드의 이야기체 영화에 대항하여 새로운 형식에 주력하던 중, 20년대 전위영화의 선구자들이 반인습적이며 개성적인 영화, 그리고 좀더 생생하고 주관적인 세부묘사를 인상주의적으로 묘사하려 했던데서 붙여진 명칭으로서, 본래는 19c 회화의 인상주의에서 영향을 받은 사조이다. 즉 이야기체 형식이 외부적, 물리적 행위가 아니라 등자인물들의 내적인 심리상태를 인상적으로 묘사함을 가리키는 바, 이는 20년대 초반에 포토제닉과 리듬을 주창했던 초기의 전위영화 작가들에 의해 상업, 비상업을 가리지 않고 순수 형태의 영화창작이 진행되었던 데서부터 비롯되었다. 델릭(Louis Delluc), 뒬락(Germaine Dulac), 엡스탕(Jean Epstein), 강스(Abel Gance), 레르비에(Marcel L'Herbier), 그리고 르노아르(Jean Renoir)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등장인물의 꿈, 환상, 심리상태, 기억 등의 소재를 주로 다루었고 이의 표현을 위해 과거장면을 통한 자유로운 시간의 구성을 애용했다. 스타 일면에서는 주관적인 인상을 묘사하기 위해 아이리스, 마스크, 합성인화, 영상의 왜곡, 연초점, 비정상적인 촬영각도 등등이 주관적 시점이나 가속 편집, 또는 교차편집 등과 함께 복합되어서 뛰어난 심리효과를 창출해 내었다. 아울러 사실적인 세팅이나 현지촬영을 통해 주관적이며 찰나적인 인상을 묘사하려는 특생이 두드러졌는데, 특히 이 점에서 내적 경험을 표현하기 위해서 현실을 고의적으로 왜곡시키고 인공화시켰던 표현주의와 분명히 구별된다. 한편으로는 영화기술적 측면에서도 유수한 실험이 행해졌다. 예컨대 강스의 <나폴레옹>에서는 275mm 망원렌즈가 사용되었는가 하면 폴라비전이라 불리는 다중화면과 대형화면비율이 채택된 바 있다. 또 시점을 표현하기 위해 크레인, 전차, 이동 사다리, 롤러 스케이트, 썰매, 자동차 등을 사용했으며, 이들은 상기한 스타일과 어우러져 찰나적인 내면적 인상을 주관적으로 표현하는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이상과 같은 영화적 묘사는 할리우드 영화에 대항하여 침체된 프랑스 영화산업계에 새로운 활로를 제공했으며, 이후 30년대와 50년대의 르네상스기를 이루는 동안 내내 프랑스 영화의 독특한 스타일로 주조를 이루도록 공헌하였다. 반면에 이같은 추세는 점차 영화감상의 엘리트화를 초래하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20년대말의 대공황과 유성영화의 출현으로 인해 그 추진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따라서 인상주의는 20년대 초반에서 1928년경까지를 대표한 하나의 사조였다고 볼 수 있고, 심리주의적인 이야기체나 주관적 카메라, 또는 역동적인 편집 등을 통한 리얼리티의 인상주의적 표현이 그 업적이었으며, 이후의 프랑스 영화의 특징적 스타일로 확립되었음은 물론, 데렌(Maya Deren)이나 히치코크(Alfred Hitchcock) 같은 외국의 감독들과 할리우드의 몽타쥬 시퀀스같은 기법, 그리고 공포영화나 느와르 영화 등의 장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작가론 (auteur theory, auteurism)

영화작가론, 또는 영화작가주의라고도 한다. 작가, 저자(auteur)라는 뜻의 불어에서 유래된 비평, 이론 용어이다. 이론적인 측면에서 오떼르(auteur)란 영화작품 속에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영화감독을 뜻하며, 이것에 대한 이론(theory)이란 작품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근거를 밝히거나, 일련의 작품을 통해 나타난 개성을 전거로 하여 그 감독의 농력을 평가하는 일을 말한다. 오떼르는 오늘날 창조성이 뛰어난 감독을 지칭하는 용어, 즉 진정한 영화작가라는 뜻으로 일반화되어 있다.
이 용어를 최초로 상용한 사람은 트뤼포(Francois Truffaut)였는데, 그는 1954년에 프랑스의 세계적인 영화잡지인 "까이에 뒤 시네마"지에 기고한 '프랑스 영화의 한 경향'이라는 글을 통해 인습적이고 장인적인 당싱의 영화경향을 통렬히 비난하면서 문학에의 시녀노릇이나 잘 짜여진 극의 전통에서 벗어나 감독의 개성적, 예술적인 능력을 발휘할 것을 촉구하였다. 동시에 이러한 주장은 이미 1948년에 아스트의 카메라 만년필설에 근거를 둔 것이기도 하였다. 이처럼 영화의 주인으로서의 감독에 대한 역설은 이후 많은 영화감독, 평론가, 이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이윽고는 미국의 사리스(Andrew Sarris)에 의해 작가론이란 명칭이 부여되고 일반화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작가론의 비평적 관점은 먼저 영화작품의 제1 주인을 감독으로 본 다음 그가 연출한 일련의 작품을 통해 일관된 개성을 찾는 일이다. 이때 개성의 일관성은 영화의 내용적 측면보다는 형식적 측면, 즉 카메라 기법, 조명, 연기, 시간과 공간의 사용 등의 미장센을 통한 형상화의 능력을 말하고, 이에 대한 공과로서 대상이 된 감독을 작가인가 아닌가, 그리고 작가라면 영화사의 어느 곳에 자리잡게할 것인지를 경정하게 된다. 따라서 개성은 선영화적인, 또는 영화외적인 개성이 아니라 영화작품이라고 하는 텍스트를 통해 나타난 개성, 즉 괄호 속의 작가를 뜻한다. 시리스는 이같은 맥락에서 영화작가의 자격 세가지를 요약한 바 있다. 첫째는 영화매체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 탁월한 기술, 둘째는 이를 통한 개성의 표현, 셋째는 전항의 두가지가 혼연일체가 되어 궁극적으로 내적 표현이 이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60년대 후반 이후 작가론은 다수의 비평가들에 의해 낭만주의적 발상, 감독의 신격화, 종합매체인 영화예술의 단순화, 선입견적 의도적 오류 등등의 단점을 지적, 비난을 받은데 따라 다각적인 수정, 보완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나 비평사적 관점에서 바라볼때 그 많은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유수한 공헌을 간과할 수가 없다.
첫째, 작가론은 그 이전의 영화평론의 주류였던 내용비평, 특히 사회학적 비평보다는 영화매체의 독자성이라 할 수 있는 형식비평의 모티브를 제공했다. 둘째, 영화를 진지한 예술형태로 보고 본격적인 방법론의 모형을 촉구하였다. 셋째, 영화예술적 측면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영화세계의 하부구조를 인정했다. 이를테면 당시에는 마춤복이라는 하대를 받던 헐리우드 영화의 경우, 스튜디오 시스템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그 체계 내의 훌륭한 감독들인 히치콕, 하워드 혹스, 존 포드 등을 발견해 냄으로써 이른바 '숲의 비평'에 대한 '나무 비평'을 가능케하였다. 이후 인정받지 못하던 많은 감독을 발굴한 것도 또한 작가론의 공헌이었다. 마지막으로 영화예술계는 물론 비평과 이론적인 면에서까지 영화감독의 중요성을 환기, 정착시켜 '영화는 곧 감독의 예술'이라는 보편적 인식을 확립시켰다. 더우기 이상과 같은 비평적 태도로 인해 이후의 영화연구가 본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작가론의 중요성은 크다고 할 수 있다.



장르 (genre)

영화의 양식, 스타일, 주제, 극적 구조, 분위기 등 유사한 표현상의 인습적 요소를 바탕으로 해서 동일한 영역으로 분류한 것. 일반적으로는 서부영화, 희극영화, 음악영화 따위의 극영화를 지칭하지만, 나아가서는 기록영화, 만화영화, 실험영화 간의 분류에도 적용된다. 서부영화는 19세기 미국 서부의 개척시대라는 역사 지리적 컨벤션과 정의로운 총잡이의 의로운 고투나 불가피한 정당방위라는 성격화의 컨벤션, 또는 황야, 초원, 작은 마을, 인디언, 보안관, 살롱, 기병대 등의 시각적 컨벤션에 의거한다. 기록영화는 극영화의 허구성에 비해 비극적 리얼리티를 그대로 기록한다는 컨벤션을 지닌다. 이와같은 표현의 컨벤션에 전거하여 각각의 영화양식에 특징적으로 표현된 요소를 변별하고 가치화하는 영화비평을 장르 비평이라고 한다.



장르 비평 (genre criticism)

작품의 보편적 특성에 따라 분류, 분석하는 비평의 한 방법. 장르는 작품의 내용이나 형식에 있어 원형적 패턴과 특성에 따라 구분되는데, 연기, 세팅, 주제 등이 그 요소가 된다.
구체적으로 장르 비평가들은 작품의 분석에 앞서 그 작품이 장르의 모델에 얼마나 적함한가, 감독이 장르의 컨벤션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에 따라 장르 분류를 하게되며, 이를 기준으로 작품의 분석에 들어가게 된다. 또한 장르 역사의 연구와 더불어 이와 관련된 작품 스타일의 진화과정도 주요 연구 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그리피스의 <피그 앨리의 보병>(The Musketeers of Pig Alley '12)에서부터 시작된 악한영화는 30년대 초반 <공중의 적>(The Public Enemy '31), <스카페이스>(Scarface '32) 등의 절정기를 지나 소위 범죄영화로 장르의 진화가 이루어졌다. 또 독일의 표현주의나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 영화가 단기간 내에 수명을 다한 것에 반해 악한영화, 서부영화, 공포영화 등은 영화초기부터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음에 주목하여, 그 스타일의 변화과정을 연구한다. 즉 앞의 악한영화의 경우 30년대 이후 여러 번의 변천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60년대 프랑스의 누벨바그 계열의 작가들은 악한영화에 프랑스적인 터치를 가미하기도 했고, 70년대에는 저렴한 제작비의 흥행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장르 비평의 또 다른 주요 연구분야는 작품이 반영하는 정치, 사회, 문화적 기능을 살피는 것이다. 즉 작품의 배경이 되는 사회적 상황과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연구대상이 되는데, 예를 들어 1960년대의 영국의 소위 반기성영화(anti-establishment)는 지배계급에 의한 노동계급의 착취라는 사회, 정치적 상황인식에 근거를 둔 영화라는 점에서 연구되었다.



전위 영화 (avant-garde)

전위란 '진보적 집단'이란 뜻의 불어로, 영화에서는 좁게는 1918년과 1930년대 초반에 걸쳐 유럽에서 만들어졌던 실험영화와 비상업영화, 넓은 의미로는 여타의 모든 실험영화 및 비상업영화 일반을 지칭한다. 즉 전위영화는 상업영화의 관습적인 이야기체 구조와 기법을 거부하고 새로운 시각경험의 방법을 추구하며, 영화를 개인표현의 매개체로 사용한다. 이러한 전위영화는 크게 3개 범주로 구분된다. 즉 첫째 영상 그 자체를 사실의 비재현적 형태로 파악하는 절대영화와 추상영화, 둘째 현실세계를 비현실적인 방식-꿈이나 환상을 통해 무의식의 세계를 표출하거나 인간의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묘사하는 초현실주의 영화. 세째 영상의 가변적 시,공간 차원을 통해 실제 세계에 대한 주관적인 인상을 보여주는 영화로 구분할 수 있다.
또한 전위영화사를 통해 나타나는 기간별, 그룹별로 이를 구분해보면, 처음 대두된 것이 추상적인 선과 원, 기하학적인 도형을 통해 영화적 리듬을 추구하였던 1920년대 독일의 절대영화로, 에겔링(Viking Eggeling), 리히터(Hans Richter)가 대표적 인물이다. 이어 1920년대와 1930년대 초반 끌레르(Rene Clair), 레제(Fernand Reger), 레이(Man Ray) 등의 다다 계열의 작품과 달리(Salvador Dali), 부뉴엘(Louis Bunuel)의 <안달루시아의 개>(Un Chien Andalou '28)로 대표되는 초현실주의 영화 등 프랑스에서 전개되었던 실험영화 그룹이 등장했고, 카발캉티(Alberto Cavalcanit)의 <절박한 시간>(Rien que les heures '26)와 비고(Jean Vigo)의 <니스의 결정>(A Propos de Nice '30) 등으로 대표되는 인상주의 작품들이 나타났다. 또한 미국에서는 데런(Maya Deren)으로부터 시작하여 브래키지(Stan Brakhage), 메카스(Jonas Mekas), 앵거(Kenneth Anger), 워홀(Andy Warhol), 클라크(Shirley Clarke) 등의 수많은 작가를 배출하고 1950년대의 뉴아메리칸 시네마까지 계승되는 전위영화의 맥을 이어갔으며, 1960년대 이후 유럽과 아시아에서는 독립영화의 그룹들이 형성되었다. 지역적으로 강력한 전위영화운동을 전개했던 나라로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유고, 일본, 미국 등을 들 수 있다.



절대영화 (absolute film)

영화의 이야기체적 기능으로부터 영상의 자유로움을 분리, 강조하는 실험영화의 한 유형. 주로 다디이즘의 영향을 받아 영상의 순수성을 강조했다.
<베를린 : 대도시 교향곡>(Berlin : Symphony of a Great City '27) 등을 발표한 루트만(Walter Ruttmann) 은 인습적인 이야기체의 연속성에 의한 서술구조를 탈피하여 리듬과 심리적인 연속성에 주력했다. 역사, 자연, 문화 등의 모든 현실적 대상을 부정하고 선과 리듬에 의한 순수 시각적 형태를 주장하는 이러한 견해는 화가인 에겔링(Viking Eggeling)과 리히터(Hans Richter)에게도 동일한 모티브였다. 에겔링은 우파(Ufa)의 후원으로 제작한 일련의 작품을 통해 대각선, 평행선, 수평선 등의 기하학적 선을 이용한 운동으로 시각적인 리듬의 미학을 주창했고, 리히터 역시 리듬이라는 제목의 연작영화를 통해 스크롤 페인팅(scroll painting)의 형식을 채용함으로써 순수시각적 율동을 강조하였다. 또한 이같은 무성영화의 실험에서 진일보하여 피싱거(Oskar Fishinger)처럼 영상과 음을 대위법적으로 사용한 절대영화로 계속되었다.
이처럼 극적형식을 타파하려는 이들 화가에 의한 이 실험영화는 영화가 영화적일 수 있는 최종적 입장을 순수한 영상적 리듬이라는 절대성에 두었기 때문에 특별히 절대영화라는 명칭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그러나 역사상 최초의 아방가르드라 할 이들의 20년대 활동은 이후 나치즘의 대두로 반사회적이라는 입장에 처하게 되었고, 이와 동시에 지나친 순수성에의 집착으로 그 생명이 길지는 못했다. 이같은 정치적 이유로 인해 작가들이 국외, 특히 미국으로 이주함으로써 이후의 실험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지하영화나 최근의 확대영화에 까지 그 실험성이 천착되는데 공헌하였다.



정신분석학적 비평 (psychoanalytic criticism)

60년대말 이후에 대두된, 영화기호학의 선상에서 영화텍스트를 정신분석학적으로 분석, 비평하는 방법론. 고전적 정신분석학에서는 작가와 텍스트에 연구대상이 국한되었으나 오늘날에는 텍스트와 관객의 관계, 특히 관객의 영화 이미지에 대한 동일화 과정과 영화텍스트의 내러티브의 특성, 영화매체의 특성자체에 대한 연구로 그 폭이 확대되었다.

영화매체의 특성에 관해 비평가들은 영화를 꿈에, 스크린을 창문, 프레임, 혹은 거울에 비유한다. 영화를 꿈으로 보는 경향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1916년 뮌스터베르크(Hugo Munsterberg)는 "영화에서는 우리의 상상이 스크린에 투사된다."고 하였고, 1946년 마우에르호퍼는 꿈과 영화를 비교하면서 "잠 속에서 우리는 꿈을 스스로 만들어내지만 영화에서는 이미 만들어진 것이 드러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타일러(Parker Tyler)는 영화란 사람들이 낮에 꾸는 꿈을 산업화시킨 것, 즉 꿈의 공장(dream factory)이라고 하였다. 스크린의 창문과 프레임에 대한 비유는 영화이론에 중요한 논쟁거리를 제공하였다. 바쟁은 스크린을 창문에, 미트리(Jean Mitry)는 프레임에 비유했는데, 바쟁에 따르면 우리는 스크린 바깥공간은 볼 수 없지만 바깥공간이 있다는 것을 안다. 즉 온 스크린은 항상 오프 스크린을 암시하며 원심적 형태를 이룬다고 했다. 반면에 미트리는 우리의 관심은 스크린 내부공간에 집중하므로 스크린을 원심적이라기 보다는 구심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즉 창문으로서의 스크린은 대상 공간(object plane)이므로 깊이가 강조되며, 프레임으로서의 스크린은 회화 공간(picture plane)이므로 평면성이 강조된다. 그리하여 창문으로서의 스크린은 전심초점과 쁠랑 세깡스를 선호하는 사실주의 이론을, 프레임으로서의 스크린은 몽타쥬를 선호하는 형식주의의 이론을 대변한다.
근자에 이르러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적 비평가들은 스크린을 의미화 과정 그 자체로 설명하는데, 특히 보드리(Jean Louis Baudry)는 스크린을 거울에 비유하였다. 이 거울에 대한 비유개념은 관객의 영화 이미지에 대한 동일화 과정과 함께 설명이 된다. 라캉은 거울 앞의 아이가 주체와 객체를 구분 못하는 거울단계(mirror stage)를 관객의 1차 동일화(primary identification)로 설명하였다. 즉 관객이 영화속의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단계, 다시말해 이미지에 얽매이는 상상적 질서(imaginary order)에 따르는 단계를 말한다. 이어 아이가 언어를 익히면서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는 오이디푸스 단계(oedipal stage)에서 관객은 도상계와 현실계를 구분하는 2차 동일화 과정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영화 텍스트의 내러티브의 특성에 관해서는 메츠(Christian Metz)와 노웰 스미스(Geoffrey Nowell-Smith)가 영화의 내러티브를 스토리와 담론으로 구분하였다.
근자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정신분석학적 이론을 토대로 많은 작품분석과 연구가 행해지고 있는데, 특히 프랑스의 '코뮤니카시용'지와 '카이에 뒤 시네마'지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직접영화 (다이렉트 시네마,direct cinema)

1960년대에 미국에서 시작된 기록영화의 한 양식으로, 메이슬리스(Albert Maysles)가 제재에 대한 직접적이고, 즉각적이며, 진정한 접근방식에 대해 언급하면서 일반화되었다. 즉 이전까지의 기록영화가 취했던 계획된 이야기체의 접근방식을 피하고 예행연습이나 편집을 최대한 배제하여, 사건을 있는 그대로 담고자 하였다. 출연자들은 어떤 개입이나 유도도 배제된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자신의 동기, 자세, 심리상태를 드러내도록 했고, 또한 카메라는 가능한한 줌 렌즈를 사용하여 대상에 접근하여 촬영함으로써 사건을 꾸밈없이 객관적으로 포착하려는 자세를 유지했다.
직접영화의 첫 작품은 1960년 위스콘신에서의 후버 험프리와 케네디 간의 대통령 예비선거를 담은 드류(Robert Drew), 리콕(Richard Leacock)의 TV용 기록영화 <예비선거>(Primary '60)이다. 두류 팀은 이후에도 ABC사의 <클로즈 업>(close Up!) 시리즈를 수 편 제작하였으며, 이 그룹 출신인 펜베이커(Donn Pennebaker)가 <밥 딜런>(Bob Dylan)과 <뒤돌아 보지마라>(Don't Look Back '66)를, 엘버트와 데이비드 메이슬리스가 <세일즈맨>(Salesman '69)을 제작한 후, 일반 영화관에서도 상영되었다. 직접영화의 테크닉은 TV 뉴스와 기록영화 제작방식에서 비롯되었는데, 각종 장비 역시 TV매체의 장비를 개선시킨 것이 많았다. 즉 소형 경량의 핸드 헬드 카메라와 동시녹음이 가능한 사운드 장비, 자연광하에서도 사용이 가능한 고감도 필름, 일정 거리에서 스피치를 담을 수 있는 지향성 마이크, 카메라의 직접 개입을 피할 수 있는 줌 렌즈 등이 많이 쓰였다. 이러한 장비의 특성을 살려 경조화면과 거칠은 녹음, 카메라의 급격한 움직임 등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러한 스타일은 관객으로 하여금 제작자의 한 작품을 본다기 보다 실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직접적으로 본다는 느낌을 강하게 갖게 해주었다. 와이즈만(Frederick Wiseman)은 이러한 직접영화의 기법을 응용하여 인상적인 일련의 기록영화 시리즈 <티티커트 폴리즈>(Titicut Follies '67), <고등학교>(High School '68)를 만들었으며, 후에 이러한 테크닉은 보다 역동적인 편집을 병용하여 여러 편의 콘서트 영화 - 예를 들어 메이슬리스 형제의 롤링 스톤즈의 콘서트를 담은 <Gimme Shelter '70> - 를 제작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이러한 뛰어난 기동성을 지닌 직접적인 접근 방식은 극영화에도 영향을 끼쳤는데, 카사베츠(John Cassavetes)의 <얼굴들>(Faces '68), <남편들>(Husbands '70)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직접영화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에서 붐을 일으켰던 진실영화는 장비나 기술면에서 직접영화와 유사한 점이 많지만 제작자가 작품에 직접 뛰어들어 주제에 대한 인터뷰 등을 통해 진실을 밝히고, 극적인 상황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철저히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직접영화와 구분된다.



진실영화 (시네마 베리떼, cinema verite)

'영화 진실'이란 뜻의 용어로, 1960년대에 프랑스에서 전개되었던 일련의 기록영화 제작방식을 가리킨다. 즉 기동성이 뛰어난 소형 경량의 장비를 사용하여 즉시성, 자발성, 확실성을 강조하며, 소재에 대한 어떤 예상된 이야기체나 고정관념을 배제하는 방식을 말한다. 시네마 베리떼라는 용어는 로슈(Jean Roche)가 모랭(Edgar Morin)과 함께 만든 <여름의 연대기>(Chronique d'un Ete '60)를 해설하는 과정에서 처음 사용되었고, 그 이론과 실천방안은 뉴스영화 시리즈인 '키노 프라우다'를 만들었던, 영화사 초기의 러시아인 베르토프, 그리고 플래허티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여름의 연대기>에서 두드러진 수법은 제작자가 직접 제작과정에 뛰어들어 인터뷰 등을 통해 하나의 주제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는 것으로, 당시 미국에서 성행하였던 직접영화는 제작자를 작품속에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진실영화와는 차이를 보였다. 진실영화의 이러한 기법은 60년대의 프랑스의 누벨 바그와 미국의 카사베츠(John Cassavetes)의 작품 등에도 영향을 미쳤다.



초현실주의 (surrealism)

1920년대 중반에 프랑스에서 미술, 문학, 그리고 영화부문 등에서 발흥하였던 문화운동. 다다이스트 운동과 깊은 관련이 있는 초현실주의는 반관습적이며 부조리한 경향을 지니는 동시에 프로이트의 도움을 받아 심상을 재창조하고 막스의 이론을 바탕으로 지배계급에 대한 보다 확고하고도 정치적인 공격을 가하였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작가인 앙드레 브레통은 1924년과 1929년의 2회에 걸친 초현실주의의 선언을 통해 이성과 도덕의 장해를 받지 않고 마음을 표현하는 예술을 주장하고, 아울러 기존의 예술에 대한 관념의 타파를 주장하였다. 그에게 있어 줌, 환상, 자유로운 심상의 활동, 그리고 무의식 그 자체는 곧 진정한 실체였다. 예술에 있어 이러한 사실은 자동연성과 자동기술법이라고 하는 비억압적이고 자유로운 과정을 통하여 창조된다고 보았다.
초현실주의의 영화는 이러한 운동을 나름대로 발전시켜 내적 사실과 외적 사실의 구분을 없애고 원인과 결과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를 파괴하였다. 또한 우연과 예기치못했던 놀라운 사실을 강조하고, 불합리하고 신경질적이며 그로테스크한 심상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객체가 중립적이고 논리적인 컨텍스트에서 벗어나 추상성과 상징성을 강조하는 기묘한 영상을 강조하였다. 초현실주의 영화의 대표작으로는 레이(Man Ray)의 <바다의 별>(L' Etoile de Mer '28)과 브뉘엘(Louis Bunuel)과 달리(Salvador Dali)의 공동작인 <안달루시아의 개>(Un Chien Andalou '28)를 들 수 있다. 달리가 부분적으로 각본을 쓴 브뉘엘의 <황금기>(L'Age d'Or '30)에서는 교회와 중산계급의 도덕성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였다. 브뉘엘은 오랜 뒤에도 이러한 초기 작품의 성향을 버리지 않고 <부르조아의 사려깊은 매력>(The Discreet Charm of the Bourgeoisie '72)과 <자유의 유령>(The Phantom of Liberty '74) 등에서 관습적인 사회에 날카로운 조소를 보냈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작가, 화가, 영화인인 콕토(Jean Cocteau)도 몇몇 중요한 초현실주의 영화를 만들었으나 그 자신은 물론 초현실주의자들 조차도 그를 초현실주의 계열에 포함시키지는 않았다. 그의 첫작품 <시인의 피>(The Blood of a Poet '30)에서 콕토는 상상과 실제가 혼재하는 시인의 세계를 창조해내었다.



초커 (choker)

화면에 꽉찬 접사의 속어. 대개 한 연기자의 얼굴이 화면을 빈틈없을 정도로 채웠을 때를 가리킨다.



추상영화 (abstract film)

1.원래의 피사체를 형태, 선 등의 본질적 요소만으로 보여주는 영화의 총칭.
2.이야기체의 서술구조보다는 시적 리듬과 순수영상의 표현을 강조하는 비구상적 영화형식의 총칭. 일명 절대영화라고도 하나 그보다는 더 광의의 개념에서 전위영화의 한 양식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통례이다. 일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전반에 성행했던 시, 회화 등의 전위예술운동의 참가자들이 직접 영화를 실험하거나 또는 그 영향을 받아 영화의 순수양식을 추구하던 이 유파의 작품에서는 영상은 자신들의 일상적인 의미를 나타내기보다는 편집, 시각 디자인, 음질 등의 수단을 통해 순수 리듬형식을 강조한다. 대상물의 율동적, 기계적 움직임을 영상화한 레제(Fernand leger)의 <발레 메카닉>(Ballet Mecanique '24)이나 레이(Man Ray)의 <이성으로의 복귀>(Le Retour a la raison '23) 등이 좋은 예이다.
추상영화는 크게보아 세가지 범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현실이나 회화화된 소재를 촬영에 의해 필름에 담되 그 목적을 순수형태의 지각에 두는 경우로, 순수영화나 형태적인 기록영화를 들수 있다. 두번째는 프레임 하나 하나마다 촬영해가는 동화기법으로서, 오늘날의 컴퓨터 영화나 만화영화도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세번째는 카메라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필름상에 직접 영상을 담는 방법인데, 그림을 그리고, 색을 칠하고 또는 칼로 긁어내고 못으로 선이나 형태를 그리는 따위가 그러하다. 20년대 독일의 절대영화가 이 범주에 속한다.



표현주의 영화 (expressionism film)

1918년에서 1925년 경까지 독일 바이마르 공화기의 주류를 이루었던 영화사조. 세계 제1차 대전의 패전 후, 제국주의 지배의 꿈이 붕괴되자 기성 가치관은 허물어지고 정권을 잡은 사회민주당에 대한 기대의 좌절, 극좌와 극우의 끊임없는 충돌로 야기된 사회적 혼란, 인플레이션과 실업의 악순환이라는 경제적 파국상태에서 생겨난 독일국민의 심리상태, 즉 미래에의 불만이 자포자기 상태의 암울한 풍조를 만연케하였는 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 당시의 중요한 대중문화 수단이었던 영화의 내용면에 압도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표현양식의 면에서는 20세기 초반에 인상주의의 반동으로 생겨난 예술전반의 경향인 표현주의의 영향, 즉 사물의 예술적 재현에 있어 외적인 사실성을 거부하고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사물의 잠재적 의미구현에 가치를 두고있던 경향의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표현주의 영화 역시 공포, 증오, 사랑, 불안 등의 내적 인간의식의 절박한 상태를 객관적인 상징을 통해 양식화하려는 경향이 있었고, 이러한 의미에서 과장된 리얼리티의 형상화라고 할수 있다.
최초의 표현주의 영화는, 물론 1913년에 베게너(Paul Wegener)가 제작한 <골렘>(Der Golem)이나 1916년에 리페르트(Otto Rippert)가 제작한 <호문쿨루스>(Homunculus)도 이미 표현주의 영화적인 요소를 예시하고 있지만, 데전 직후에 제작된 비네(Robert Wiene)의 <칼리갈리 박사의 밀실>(Das Kabinett Der Dr. Caligari)에서 부터 비로소 본격적인 조류가 형성되었다고 볼수있다. 이어 베게너가 재제작한 <골렘 '20>과 랑(Fritz Lang)의 <운명>(Destiny '21)과 <닥터 마부제>(Dr. Mabuse. the Gambler '22), 무르나우(F.W. Murnau)의 <노스페라투>(Nosferatu '22)와 <마지막 웃음>(The Last Laugh '24), 그루네(Carl Grune)의 <거리>(The Street '23), 파브스트(G.W. Pabst)의 <쓸쓸한 거리>(Joyless Street '25), 듀퐁(E.A. Dupont)의 <버라이어티>(Variety '25), 레니(Paul Leni)의 <왁스 워크>(Wax Works '24) 등의 대표적인 작품들이 발표되었고, 이와 더불어 마이어(Carl Meyer)와 같은 시나리오 작가, 프로인트(Karl Freund), 바그너(Fritz Wagner) 등의 촬영기사, 바름(Hermann Warm), 뢰리히(Walter rohrig), 훈테(Otto Hunte) 등의 미술감독, 포머(Erich Pommer)와 같은 제작자, 그리고 야닝스(Emil jannings)를 비롯한 캄머슈필(Kammerspiel)의 연기자들이 어우러져 독일영화의 황금기를 형성하게 되었다.
표현주의 영화의 특징은 미장센과 카메라 움직임으로 대별할수 있는데, 전자의 경우에는 특히 조명, 세팅, 연기자가 대표적이며, 후자의 경우에는 시점의 극적 처리와 카메라 움직임의 유연성, 그리고 간단하면서도 대담한 줄거리 구성을 들수 있다. 우선 데코르와 조명은 최초의 영화적 장점을 이룩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칼리가리의 주인공들은 세팅을 통해 움직인다. 그들은 계속해서 정적인 그림자와 기괴한 디자인과 흡수된다."고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ner)가 지적했듯이 테코르나 조명이 곧 연기를 담당한다. 실제적인 무대장치나 화폭에 그려서 사용하면서도 사실적인 형태나 선, 또는 원근법을 무시하고 비현실적인 변형을 통해 의식 저변을 표현하려했으며, 조명 역시 사실적인 빛과 그림자의 관계를 무시하고 비논리적인 조명을 통해 의식세계와 무의식세계의 충돌관계를 구현하려하였다. 연기는 행위의 미묘한 뉘앙스를 표현하지 않고 분명하고도 강력한 제스처로 표현된다. 즉 과장된 연기이다. 그러나 이때의 과장이란 곧 강렬하고도 순수한 심리상태에서의 기본적인 키 포인트가 되는 행위와 감정의 추상적인 상징을 의미한다. 영화의 장편화를 이룩한 줄거리의 구성은 간단 명료하여 등장인물의 심리적인 묘사에 치중하며, 따라서 카메라 움직임의 유동성이 중시되었는 바, <마지막 웃음>이나 <거리>에서 장시간 촬영으로 나타나고, 심리묘사의 경우에는 사각이나 대칭적인 구성을 통해 최초의 주관적 시점이 정점화되기도하여 이후의 영화예술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사상적인 면에서의 표현주의는, 이어지는 거리영화의 경우와 함께, 크라카우어의 주장처럼 "히틀러에 이르는 권위와 불안 사이의 갈등"이었다고 볼수 있다. 요컨대 현실을 떠난 사실성의 추구란 곧 무정부상태의 끊임없는 혼란이나 독재체제 외의 다른 출구가 없다는 심리상태에서 권위체제나 독재체제로의 지향이라는 독특한 독일의 사회심리적 변천과정이었다고 볼수 있다. 반면에 표현양식의 측면에서는 영화사에 귀중한 토대를 마련하여 이후의 세계 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있다. 특히 첫째는 할리우드의 유혹에 의해 자진해서, 둘째는 히틀러의 정권장악에 의해서 미국으로 건너간 당시의 독일 영화인들에 의해 30년대의 악한영화나 공포영화가 융성해졌고, 개인적으로는 고다르(Jean-Luc Godard)의 <네 멋대로 해라>(A Bout de Souffle '60), 레네(Alain Resnais)의 <지난해 마리엔바드에서> (L'Annee Derniere a Marienbad '59), 펠리니(Federico Fellini)의 <8 1/2>(Ottoe Mezzo '63), 히치코크(Alfred Hitchcock)의 <사이코>(Psycho '60), 그리고 웰즈(Orson Welles)의 <심판>(The Trial '62)에 이르는 현대 영화사에까지 끝없는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형식주의 (formalism)

내용이나 주제보다 형식과 테크닉에 더 큰 비중을 두는 미학 이론이나 사조. 영화는 초창기부터 두가지 이론, 즉 사실주의와 형식주의를 축으로 전개되어 왔는데, 형식주의는 에이젠슈타인(이론과 실천의 겸비)과 아른하임(철학과 심리학적 배경 제공), 발라즈(여러 예술과의 비교)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형식주의 이론은 1920년대 소련에서 기틀이 잡혔다. 러시아 혁명이후 소련영화는 이론과 실천면에서 급격한 발전을 이루게 되는데, 쿨레쇼프(Lev Kuleshov), 푸도프킨과 에이젠슈타인이 이론적 토대의 확립은 물론 이론의 실천적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들의 이론은 때로 표현주의와 혼용되기도 하는데, 형식을 중요시한 점에 있어 일맥상통하나 형식주의가 형식의 요소와 세부를 중요시하는 보다 과학적인 이론인 반면, 표현주의는 형식의 보편화된 감상적 개념에 치우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이들 소련의 형식주의자들은 영화의 변별성과 예술성을 편집(좁은 의미에서의 몽타쥬)에 두고 이론을 전개하였다. 이들의 이론은 당시까지 아방가르드 운동이나 표현주의 영화론으로도 획득하지 못했던 영화의 예술적 지위를 확고하게 다져주는 것이었다. 쿨레쇼프는 유명한 '창조적 지리학'과 '모쥬킨의 실험을 통해 무의미한 단편들이 연결이 어떠한 의미를 창조해내는가를 밝혔고, 푸도프킨은 그의 상관편집(relational editing)을 통해 몽타쥬를 관객의 심리를 유도하는 방법으로 주장하였다. 에이젠슈타인은 "영화형식과 영화감각.(Film Form and Film Sence) 등 그의 방대한 연구작업을 통해 몽타쥬 이론을 집대성하였는데, 몽타쥬를 단편의 연결로 보는 푸도프킨과 달리 충돌의 의미로 보았다. 그는 리얼리티에 접근하기 위해 리얼리즘의 파괴가 필요하며, 리얼리티의 문제를 예술가 사이의 문제로 보았다. 그리하여 그는 단편들의 분해와 중립화 과정을 통해 변증법적 연결로 까지 이어지는 지적 몽타쥬(intellectual montage)를 강조하였다.
아른하임(Rudolf Arnheim)은 "예술로서의 영화"(Film als Kunst) 등의 저작을 통해 영화이론을 전개하였다. 그는 영화의 구성요소에 관심을 두고 영화의 예술성을 영화가 지닌 비현실적 요소에 의한 것으로 보고, 1.입체의 평면에의 영사. 2.깊이감의 감소와 영상의 크기. 3.조명과 색채의 결여. 4.영상의 한계와 대상과의 거리. 5.시공의 연속성의 결여. 6.불가시적 감각세계의 결여 등을 영화의 비현실적 요소, 즉 영화예술의 구성요소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형식주의 이론은 유성영화와 색채영화의 등장으로 많은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또 한 사람의 주요 형식주의 이론가인 발라즈(Bela Balazs)는 영화의 하부구조를 중요시하여 사회, 경제적 여건에 따라 영화형식이 변화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또한 사실의 세부적 묘사를 가능케해주는 클로즈 업을 중요시하여 이를 숨은 힘(secret power)으로 표현하였다.
1920년대 이후 영화이론의 주류를 이루었던 형식주의 이론은 40년대 이후 유성영화의 번성과 전심초점, 장시간 촬영을 기저로하는 사실주의 계열의 영화의 등장,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 바쟁 등의 사실주의 이론의 등장으로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60년대에 접어들면서, 영화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형식주의 이론은 다시 번창하게 되었다. 즉, 영화의 학문적 연구는 영화의 기본 요소에 대한 체계적 기술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에 따른 영화의 각종 기술적 요소를 응용한 표현 가능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사실주의와 형식주의가 공존하며 연구되고 있다.



70mm 영화

화면비율이 2.2:1인 대표적인 대형화면 영화. 필름의 양쪽에 프레임당 5개씩 필름 구멍이 있고 6채널의 입체 음향이 있어 5개는 스크린 뒤쪽에, 나머지 하나는 객석의 확성기에 연결된다. 영사원리도 35mm와 동일하여 기존의 35mm 영사기를 약간만 개조하면 적절히 사용할 수 있는 방면에 화면 비율은 35mm에 비해 4배 이상 확대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오늘날 국제적인 상영에는 자기식 음대를 갖춘 70mm가 공식화되어 있다.


<출처 : http://www.dungdan.com/creat-outside/content.asp?id=119&read=1829&pagec=1>